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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지원준 독립PD

느닷없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라며 의아해 할 독자들도 계시리라 믿는다. Never In My Name은 2003년에 이라크 전을 취재하기 위해 검색했던 미국 시민단체 이름이다. 처음엔 나도 ‘뭔 단체 이름이 저렇게 생겼다냐?’하는 생각뿐이었다. 알고 봤더니, 9.11 테러의 희생자 유족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였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 증거라고 제시된 것이 전혀 객관성이 없는 것들 뿐이어서 증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연달아 전쟁을 일으키고, 눈먼 포탄으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미국민의 세금을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짓에 부시는 언제나 9.11 희생자와 유족의 이름을 도용했다. 그리고, ‘네가 지분을 갖고 있는 석유재벌과 군수산업을 살찌우려고 나와 똑 같은 희생자를 다른 나라에 만드는 것이지, 나를 위해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것이 이 요상한 이름에 담긴 뜻이다.

시청료를 올리겠단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어쨌든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일이니, 반발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데,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외주 단가 현실화. 이상하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4분의 1씩 깎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역시나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올려 주겠단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차피 시청료의 90% 가까이가 인건비로 소진되는 현실에서 시청료 두 배로 올려봐야 오래 못 간다. 임금 인상분 소급 적용이 추진될 것이고, 복지 대박도 두어 번 터질 것이다. 장담하건데 4년 내로 도로 제자리다. 그 와중에 외주 단가를 한 10% 정도 올려 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후, 몇 년 전의 ‘김밥 사태’(아마, KBS 공식 명칭으로는 외주와의 단합대회일 것이다)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주 투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정연주 씨는, 나에게는 김밥 한 줄을 650만원(당시 내 연봉의 1/4)에 판 ‘세계 최고의 김밥 장수’일 뿐이다. 현장에서 650만원을 결제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는 있겠지만, 1년 정도 지나자 650만원의 효과는 틀림없이 나타났고, 호프만 방식으로 계산한다면, 나는 이미 수천만원을 결제한 셈이다. 알고 보면, 할부 수수료와 이자가 엄청나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할부 결제였던 셈이다. 현재의 KBS 경영진은 정연주 씨를 끔찍히 싫어하니, 똑같이 김밥을 팔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순대일까? 아니면 떡볶이일까? 그리고 과연 얼마에 팔까?

근로기준법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현재 독립 제작사 조연출이 받는 급여는 최저임금의 반도 안된다. 독립 PD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평균적인 노동조건에서 최저임금과의 분기점은 월 150만원 정도이다. 월 급여가 이 정도가 되려면 최하 3년은 기다려야 한다. 못해도 3, 4년은 주당 80시간 가까운 노동을 견뎌야 최저임금에 도달하는 상황. 이 무시무시한 착취의 굿 판에서 주동자는 당연히 KBS고, 적극 가담자가 타 방송사들, 단순 가담자가 독립 제작사들, 그리고 피해자는 당연히 독립PD일 수 밖에 없다.

▲ 지원준 독립PD
한국의 방송 시스템 하에서의 가장 큰 피해자를 시청료를 올리는 주범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독립 PD들의 현실에 관심을 갖는 언론사는 한 군데도 없으니, 한겨레와 조중동을 막론하고, 나를 시청료 인상의 주범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이제 나는 한국을 한참이나 떠나 있어야 하는 처지인데, 돌아와 보니 일반인 출연자들이 분노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게 될 것이 뻔한 상황이 너무나 두렵다. 어차피 힘든 것 뻔히 알고 뛰어든 독립PD의 길이니, 후회는 없다. 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싶지는 않다.

KBS를 비롯한 방송사와 신문사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시청료 인상의 명분에서 나와 독립 PD들의 이름을 제발 빼달라. 내 월급이 올라가는 것을 가장 싫어할 사람들이 바로 당신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Never! In My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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