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MBC 사장이 지난 8일 전격 사퇴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근행, MBC노조)는 총파업 수순을 밟고 있어 MBC가 또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엄 사장 사퇴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 방문진)가 엄 사장이 추천한 임원 인선안을 거부한 데 따른 것으로,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논란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엄기영 사장은 지난 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방송문화진흥회 존재 의미에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저는 문화방송(MBC) 사장, 사퇴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1988년 방문진 창립 이래로 사장이 추천한 이사 후보를 거부하고, 방문진이 내정한 이사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처음이다. 이날 이사회에는 김우룡 이사장을 포함한 여당 측 인사 6명이 참석했고 야당 측 3인은 이사회 절차에 강하게 항의하며 불참했다.
여당 측 이사 6인이 참석한 이사회에서 방문진은 보궐이사에 황희만 울산MBC 사장, 윤혁 MBC 부국장, 안광한 편성국장을 이사로 추천했다. 이후 대표이사 직무대행인 김종국 기획조정실장 등은 주주총회를 열어 이들을 보도·제작·편성본부장으로 선출했다. 엄 사장은 권재홍 보도국 선임기자, 안우정 예능국장을 보도·제작본부장에 추천했으나, 거부당했다.
김우룡 이사장은 “이사 선임 권한은 방문진이 갖고 있다. 사장이 추천하는 사람을 고려할 수 있다”며 선을 그었다. 또한 “엄 사장이 제시한 ‘뉴 MBC 플랜’을 잘 추진할 수 있는 상징성 있는 인물이 선임돼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후임 사장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사장의 권한인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며 방문진에 끌려 다니다시피 한 엄 사장은 ‘사퇴’라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엄 사장은 지난해 12월 부사장을 비롯한 임원진 일괄사표를 던져 방문진으로부터 재신임을 얻었지만, 이후 임원 인선에서 수차례 자신의 안을 거부당해 왔다.이근행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장은 “여권 핵심 관계자로부터 ‘더 이상 엄기영 MBC 체제는 안 된다’는 뜻을 확인했다”며 “청와대 뜻이 MBC에 관철됐다”고 비판했다.
지난 8일부터 ‘공영방송 MBC 사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한 MBC노조는 황희만, 윤혁 이사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8일과 9일 이틀 연속 출근을 저지당한 황 이사는 노조를 향해 “공영방송은 바다 위에 떠있어야 한다. 한쪽 바다에 떠있으면 안 된다”며 ‘엄기영 MBC’를 비판해 거센 항의를 받았다.
여의도 MBC에서 출근을 저지당한 윤혁 이사는 발길을 돌려 일산MBC 드림센터로 출근, 한 때 임원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뒤늦게 소식을 접한 노조원들이 임원실로 몰려가 집단항의를 하자 이내 회사 밖으로 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들의 출근저지를 비롯해 총파업 방침을 밝힌 MBC 노조는 오는 11~12일, 설 연휴 직후인 16~18일에 총파업 부재자 투표 및 본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언론노조는 12일부터 서울역, 용산역 등 전국에서 설 귀성객을 상대로 ‘MBC 사태’를 알리는 10만부 선전전을 진행하며 여론전에 불을 지핀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