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행정이 너무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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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행정이 너무 거칠다
[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2.1 연구소장
  • 승인 2010.02.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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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88만원 세대 저자)
나는 행정이 전공이 아니지만, 살다보니 행정을 상당한 기간 동안 하면서 밥을 먹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고건의 전설 같은 애기를 들으면서 30대를 보냈고, 이한동 총리 시절에, 상당히 즐거운 기억과 함께 총리실에서 근무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일도 했고, 하기 싫은 일도 했고, 정의롭다는 일도 했지만, 가끔은 정의롭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일도 행정 절차상 억지로 하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선생님들의 논문이나 이론을 대놓고 비판해서 ‘악동’ 소리도 줄곧 들었지만, 행정과 관련된 일을 할 때에는 가급적이면 매끄럽게 하려고 했고, 되도록이면 뒷얘기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매끄럽다는 평가를 듣기까지는 어려울지 몰라도,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라고 배웠던 것 같다. 정부라는 곳도 학계나 방송계 못지않게 ‘뒷다마’가 많은 곳이고, ‘쫑코’라고 불리는 그런 대가들이 공무원 중에는 득실득실 거렸다. 정말이지 앞에서 들으면 칭찬 같지만 가만히 집에 가서 생각해보면 문득 화가 나는 그런 말, 공무원들은 그런 말들을 참 잘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칭찬에는 인색하지만 점잖게 비꼬는 데에는 일가견들이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를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이명박 정부’라고 자신들의 이름을 선택했다. 문민의 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등 앞의 정부들과는 달리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고, ‘이명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갖는다고 해도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정말이지 그 호승지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 2년을 평가할 때, 행정이라는 눈으로만 본다면 MBC 사장의 사퇴가 가장 눈에 띈다. 현 정부에 대해서 공무원들이 평가할 때, 공무원들은 이명박 정부라고 앞에서만 부르고 뒤로 가면 ‘차관 정부’라고들 부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차관들을 밀어내고 정말 ‘자기 사람들’을 차관에 앉히고, 그 차관을 통해서 정부를 운용한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붙은 것 같다. 왜 스스로 임명한 장관을 통해서 일을 하지 않고 차관을 통해서 정책을 집행하는지, 그 깊은 속은 알기가 어렵다. 올해 국방부 예산을 둘러싸고 국방부 장관과 국방부 차관이 서로 다른 예산안을 작성했던 것을 세간에서는 ‘하극상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래도 국방부 정도니까 이 사건이 바깥으로 불거져 나왔지, 많은 부처에서 장관보다 힘이 좋은 실세 총리들이 움직인다고 해서 사람들이 ‘차관 정부’라고들 수군거리는 것 아니겠는가?

MBC 사장 사퇴는, 대체적으로 이런 차관 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엄기영이라는 분에 대해서 나는 깊이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체적으로 합리적이고 온건하며 한나라당과도 충분히 호흡을 잘 맞추어서 일할 수 있는 점잖은 분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점잖아서 ‘좌파적출’ 같이 거친 행정들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이지 못했던 것이 아마 불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부처에서 했던 것과 같이 ‘차관’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자기 맘대로 임명하려다보니, 그 결정권자인 사장이 반발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사퇴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이게 내가 이해하고 있는 MBC 사장 사퇴에 관한 사건이다.

▲ 엄기영 MBC 사장이 8일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PD저널

국방부 하극상 사태에서 MBC 사장 사퇴까지, 이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은 장관이나 사장과 논의하지 않고, 쉽게 움직일 수 있는 2인자 혹은 차석 인사를 통해서 정부기관들을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한 사건이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매끄럽지 않은 결정들이 생겨나게 되고, 2인자가 1인자를 무시하는 하극상이 빈번하게 벌어지니, 행정이 거칠어지게 된다. 지금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중이고 우파의 덕목이 바로 ‘부드러운 행정’ 아닌가? 이미 행정의 초보이고, 아마추어라는 것을 예기치 않은 사장의 사퇴 같은 것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임명한 사람이다.

가장 좋은 행정은, 대통령이 보이지 않고 청와대 얘기가 나오지 않고 뒷 얘기가 무성하지 않은 행정이다. 불편한 장관이나 공기업 사장들을 달래가면서 절차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기관의 연간 계획대로 하나씩 집행하는 것이 좋은 행정이다. 우파의 기본 덕목인 행정도 이렇게 거칠게 하면서 이사회를 장악하고 뒤에서 미리 다 배정하는 것은, 결국 다 소문이 나게 된다.

정부라는 조직은 1원1표를 행사하는 기업 이사회와 달리, 1인1표주의라는 국민의 대표 기관이라서 형식상으로는 이사회라고 하더라도 재벌 이사회의 결정과는 다른 가치들을 지켜야 하는 곳이다. 절차와 시스템,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2인자들을 통한 밀실담합의 일상화, 이건 좋은 행정이 아니다. 요즘 고건이라는 행정의 달인을 그리워하는 공무원들이 부쩍 늘었다. 힘으로 제압하기 전에 절차로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 그게 좋은 행정이지 공기업 사장이 힘에 밀려 사퇴하는 것, 이건 정상적인 행정은 아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행정은 너무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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