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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태인 경제평론가

“기대 수준에 맞지 않는데 가느니 차라리 취업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보다 적극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정부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다 챙겨줄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들의 자활 노력이다.”

지난달 18일 제2차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 나라의 청년 실업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요컨대 눈높이를 낮춰서 자활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분명 사실을 담고 있다. 청년들은 이 나라 일자리의 90% 이상을 채우고 있는 중소기업에 취직하려 하지 않는다. 그 중소기업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10인 미만 영세기업에서 첫 출발을 하려는 젊은이는 더더구나 없다.

▲ 한겨레 2월 19일자 3면.

왜 청년들은 “자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일까? 시장주의자들이 이런 경우 흔히 내 놓는 진단과 처방대로, “아직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이니 “사회의 쓴 맛”을 더 보여 주면 자활노력을 기울이게 될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전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는 안산일 것이다. 최초의 국가산업단지인 반월시화공단의 일자리를 채우는 것은 청년들이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대기업의 하청을 하고 있으니 여기서 생산되는 것은 세계 1류 상품 속에 들어간다. 그런데도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와 비교해서 절반도 안 되고 4대 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한번 이 판에 발을 들여 놓으면 웬만해선 빠져 나오지 못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패널 조사는 이들이 저임금과 반복실업이라는 ‘빈곤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낮다는 데 있다. 중소기업의 앞날이 보장된다면 누구보다도 일자리를 간절하게 원하는 청년들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생산성을 향상시킬 여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가혹한 하청단가 후려치기가 중소기업의 투자재원을 잠식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대서 연명하는 중소기업에서 기술투자를 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을 정도다.

따라서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건 공정거래이다. 대기업이 하도급법을 2회 위반했을 때 정부의 조달정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간단한 정책도 참여정부에서 입법화하지 못했을 정도라는 것이 진정한 문제이다. 두 번째로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것은 땅값이다. 반월시화단지 공장의 반 정도가 공장임대업으로 전업했다. 부동산 개발 방식의 산업정책은 결국 이런 폐단을 낳는다. ‘무상 공장’이 절실한 것은 외국기업이나 대기업이 아니라 이들 중소기업이다.

지역 대학이 인근 지역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인력공급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게 세 번째 해법이다. 취직도 보장 못하는 ‘글로벌 대학’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글로컬 대학(glocal university)’이 되어야 한다. 흔히 ‘산학연계’라고 하면 실리콘 밸리의 스탠포드대학이나 버클리대학의 첨단기술을 떠올리지만 나에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새너제이대학이었다. 이들은 야간에 현직 기술자나 경영자들과 세미나를 하면서 시급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 사실 지방대학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절벽 바로 앞에 서 있다. 대학의 연구 역량을 총동원해서 지역 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그래서 학생들의 취직도 보장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고 무엇이랴.

▲ 정태인 경제평론가
예를 들어 안산이라면 기계공학과, 소재공학등 공학부와 경제/경영학과, 디자인학과의 희망 교수와 학생들이 참여하여 ‘안산발전학부’라는 가상학부(virtual department)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몇몇 업종의 경쟁력을 진단하고 해법을 중소기업들과 함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중앙정부의 정책과 더불어 지방정부는 이러한 노력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도 막노동을 했으며, 자신이 처음 입사했을 때는 현대건설도 중소기업이었다고 되풀이 얘기한다. “내가 너만 했을 때는...”으로 시작하는 노인네들의 회고담이 언제나 빠지는 함정에 빠져 있다. 주관적 회고담에 입각해서 정책을 만들면 당연히 그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의 눈높이를 낮추라고 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눈높이를 끌어 올리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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