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기존 노조에서 나온 것 아닐까. 처음 그 마음을 잊지 말고, 우리가 왜 KBS에 다니는지, KBS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으면 좋겠다.”(정세진 KBS 아나운서)
“오랫동안 많은 고민 끝에 탄생한 노조이니만큼 정말 잘 돼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많은 갈증이 있었다. 새 노조가 그런 갈증을 말끔히 해소해줄 걸로 믿는다.”(KBS 드라마 <추노> 곽정환 PD)
“지역발령을 받으면서 <미디어포커스>, <쌈>, 탐사보도팀만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시청자를 위한 방송을 하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 지금 KBS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새 노조를 구심점으로 흔들림 없는 대오를 유지하는 것이다.”(김용진 전 KBS 탐사보도팀장)
11일 오후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 계단에서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가 공식 출범식을 가졌다. KBS 수목드라마 <추노>를 패러디해 ‘추노-KBS 진짜 노조를 쫓는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출범식 시작을 알렸다. (http://www.youtube.com/watch?v=rILgZ8uCz3s)
KBS 새 노조는 지난해 ‘김인규 사장 퇴진’ 총파업 투표 부결 이후 노조 집행부가 사퇴를 거부하자, 기자·PD들을 주축으로 한 조합원들이 노조에서 집단 탈퇴해 설립했다. 현재 KBS 본부에는 8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한 상태다.
새 노조 조합원들을 비롯해 언론단체,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이날 출범식에서 엄경철 KBS 본부장은 “지난 2년 동안 KBS를 다니면서 항상 마음이 무거웠는데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다”면서 “세 달 전 새 노조를 설립하려고 했을 때 막막함이 떠오르지만 3개월이 지나 800명이 모여 새 노조를 만들었다. 선물처럼 어제 법원이 KBS에 새 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결정했다”고 소감을 밝혔다.엄 본부장은 “KBS 이름을 당당히 붙이고 취재하던 때,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언론사로 활동하던 때가 까마득하다. 그만큼 무너져 내렸다”면서도 “다시 일어서고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 공영방송의 책무와 언론인의 사명을 지키는 이 길을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내규 KBS 본부 부위원장은 “KBS가 장악됐다고 하지만 여기 800명의 조합원들은 결코 장악되지 않았다”며 “지금부터 공영방송다운 날이 선 뉴스, 예능, 드라마를 만들자. KBS 본부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KBS 본부에 대한 외부의 격려도 이어졌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오늘 3월의 봄 하늘에 희망을 쏘아올렸다”면서 “(새 노조 출범이) 언론독립, 민주주의, 인간다운 삶을 되찾는 희망의 신호탄이 될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근행 MBC 본부장은 “MBC 본부가 총파업을 결행하지 않았지만, 할 수 없어서 안 한 게 아니라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다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힘을 아껴둔 것”이라면서 “새 노조가 탄생을 준비할 때부터 KBS 본부와 MBC 본부가 방송독립과 공영방송을 지키는 투쟁에 총파업으로 맞설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을 했다. 이제 두 노조가 형제처럼 뭉쳐 공영방송을 굳건히 지켜내자”고 결의를 다졌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금 여러분들은) KBS를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방송으로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반드시 이뤄진다. 국민들이 함께 할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KBS 본부는 이날 출범 선언문을 통해 “방송장악을 획책하는 정권의 음모에 맞서 공영방송 KBS를 지켜내고, 방송의 진정한 주인인 시청자와 국민이 참된 공영방송을 되찾는 그날까지 하나 된 의지를 모아 끝까지 힘차게 싸워나가자”고 결의했다.
한편, KBS 본부는 이날 출범식 도중 조합원들에게 의미심장한 퀴즈를 내기도 했다. “KBS에 MB특보님이 오신 이래 가장 X된 사람은 누구일까”가 문제. 3위는 “토사구팽 당한” 이병순 전 KBS 사장, 2위는 “곧 이병순 전 사장처럼 될” 김인규 KBS 사장, 1위는 KBS인(바로 우리)이었다. 출범식 사회를 맡은 오태훈 아나운서는 “지금 우리는 새로 탄생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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