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자체 기준 없어…“감정적으로 치달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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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검거로 다시 불붙은 ‘흉악범 얼굴 공개’ 논란

지난해에 이어 ‘흉악범 얼굴 공개’와 관련한 논란이 또 다시 일고 있다. 지난 10일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사건’ 피의자 김길태가 검거되면서다.

지난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사가 먼저 연쇄살인 피의자 얼굴을 공개해 ‘흉악범 얼굴 공개’ 논란을 주도했다면, 이번에는 경찰이 나섰다. 지난 10일 경찰은 김길태를 검거하면서 그의 얼굴을 카메라 앞에 그대로 노출시켰다. 그리고 언론은 경찰이 공개해버린 피의자 얼굴을 ‘굳이’ 가리지 않았다.

최영범 SBS 보도국장은 “흉악범으로 지목됐다 하더라도 오판 가능성이 있어 (얼굴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원칙론엔 공감한다”면서도 “김길태 사건의 경우 경찰이 얼굴을 공개했기 때문에 그 판단에 따라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창건 KBS 보도국장도 “경찰이 일차적으로 얼굴을 공개하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고, (KBS도) 굳이 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지난해 연쇄살인 사건 당시에는 경찰이 얼굴을 가린 상황에서 언론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고 설명했다.

차경호 MBC 보도국장 역시 “이번엔 경찰이 아예 처음부터 얼굴을 노출시켰고, 여죄 추궁이란 명분이 있었다”면서 “신고를 유도한다는 의미에서 경찰 방침을 따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부산 여중생 살해피의자 김길태씨가 지난 10일 오후 사상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김 씨는 이날 오후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 인근 모 빌라 주차장 앞에서 공개수배 12일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언론사 자체 ‘기준’ 없이 무비판적으로 얼굴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안정식 SBS 노조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 “얼굴 공개를 해야 한다면 어떤 이유에서 공개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수준 이상 공개하고, 보도해야 하는지 차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며 “지금은 사회적 공분이라는 이름 아래 다분히 감정적 측면에서 인민 재판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 3사는 지난해 한 차례 논란이 인 뒤에도 ‘흉악범 얼굴 공개’와 관련해 아직 자체 기준을 마련해놓지 않은 상태다.

임창건 KBS 보도국장은 “아직 내부에 마련된 기준은 없다”면서 “경찰이 향후 일정한 기준을 제시한다고 하니 그걸 받아보고 필요하다면 우리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경호 MBC 보도국장도 “일반적으로는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도 “여러 차례 논란이 있었지만 확실히 (입장을) 정리하진 못했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영범 SBS 보도국장은 “기준이라고 한다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진 공개해선 안 된다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그건 현실성이 없는 방법”이라며 “(사안에 따라) 내부 회의를 통해 찬반양론을 두루 수렴해 결정을 내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회적 논란이 뜨거운 만큼 언론사 내부에서도 얼굴 공개에 대한 입장은 엇갈린다. 때문에 내부 논의를 거쳐 명확한 기준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MBC의 한 기자는 “지금은 명확한 기준 없이 감정적으로 (얼굴 공개를) 하고 있다”며 “변호사, 의사, 탈세한 기업인 등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해서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김길태 사건 등) 이런 범죄에 대해서만 공개하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내부적으로는 공개해야 한다는 쪽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뉜다”면서 “지난해처럼 어떤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언론사가 공개하니 뒤쫓아 공개하는 것은 문제다. 내부적으로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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