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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언니가 간다]

▲ 김현진/ 에세이스트
전 세계 3억 명 독자의 삶을 바꿨다는 책 〈시크릿〉, 그 속편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자마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이미 청소년을 위한 시크릿, 여성을 위한 시크릿 등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시크릿이 연달아 나오며 이미 단물을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었다 생각했는데 그 두 번째 이야기라니, 사골 국물도 이런 사골 국물이 없다. 〈시크릿〉은 뭔가 대단한 비밀을 알려 주는 듯이 행세하고 이 책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너보다 먼저 알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바로 그 사실을 담고 있다고 외치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사실 〈시크릿〉에는 별 대단한 비밀이 없다.

‘Fake it till when you make it.’ 될 때까지 그런 체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시크릿〉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라’이다. 〈시크릿〉이 선심 쓰듯 알려 주는 비밀은 그냥 우주에는 어떤 법칙이 있는데 긍정적인 기운은 긍정적인 것들을 끌어들이고 부정적인 기운은 부정적인 것을 끌어당긴다는 것, 그러므로 좋은 것을 끌어당기는 것이 독자의 의무이고 그렇게 하는 방법은 이미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심지어 다이어트에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 만약 5kg를 빼고 싶다면, 이미 5kg가 빠진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5kg가 빠지면 한 사이즈 작은 청바지를 입겠다는 목표를 세운 여자는 그 청바지를 어째야 하나. 이미 5kg 빠진 것처럼 행동하려면 일단 그 바지가 들어가야 할 텐데 그 바지와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은 저자 론다 번이 보기에는 시커멓게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어 5kg를 찌울 우주의 법칙을 어기는 여자다.

▲ 책 <시크릿>
하지만 〈시크릿〉에 매혹되어 ‘아자아자 파이팅!’ 을 외치면서 오늘도 긍정적인 기운을 내뿜어 긍정적인 것을 끌어들이려는 사람들이 간혹 무서울 때가 있다. 〈시크릿〉에 깊이 경도된 사람들이 인정하는 시크릿의 법칙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한해서다.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될 사람이다. 지금은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에 다니고 있을지 몰라도 곧 내가 원하는 일류 기업의 사원이 될 사람이고, 지금은 몹시 불만스러운 연봉을 받고 있을지라도 괜찮다. 장차 내가 만족할 정도로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다. 이것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의 좋은 기운을 죄다 끌어당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그 관대함을 결코 적용하지 않는 것이 시크릿 중독자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시크릿〉은 나만 알아야 시크릿인데, 3억 명이나 샀다면 다들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셈이지만 그래도 시크릿은 시크릿이니까 나만의 비밀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게 우주의 법칙을 내 편으로 끌어당기는 길이니까. 나처럼 〈시크릿〉의 법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타인은 정신병자처럼 보인다.

나는 시크릿의 법칙대로 행동하고 있는 중이고 우주의 끌어당김의 법칙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렇게 하고 있는 다른 사람은 별 것도 아니면서 제가 뭐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다. 물론 나는 다르다. 다시 한 번, 나는 우주의 끌어당김의 법칙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니까. 이렇게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조금 무섭다가 나중에는 좀 민망하고 서글퍼진다. 〈시크릿〉이 나에게 알려 준 시크릿이란 고작 ‘버는 놈은 어떻게든 버는구나’ 정도였기 때문인데, 그 큰 벌이에 보탠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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