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 출신 그분만의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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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윤의 연예계 엎어컷]

한국에서 빌라는 주택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한옥, 양옥이라는 동/서양을 구분 짓는 건축 형태에서 출발해 빌라, 아파트, 오피스텔, 주상복합으로 현대식 건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빌라가 자리하고 있다. 빌라는 청담동이나 일산에서 아파트와 구분되는 고급주택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곳도 있는 반면, 건축 역사의 출발점(?)에 가까워 보이는 허름한 모양새를 갖춘 빌라도 있다.

tvN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후자’에 주목한다. 구식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풍년빌라’는 도시의 화려함과 거리를 둔다. 거주민들은 빌라를 둘러싼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서로를 감시하며 일정한 질서를 유지한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가 ‘섬’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자아분열성을 고발한 것처럼, 〈풍년빌라〉는 오래된 빌라라는 음습한 공간에서 빚어지는 인간의 탐욕을 산재한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어리바리한 단역배우 오복규(신하균). 집을 떠난 지 오래된 복규의 아버지는 풍년빌라에서 살다 주민들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복규 앞에 유산으로 남겨진 것은 13평의  3000만원짜리의 허름한 빌라. 하지만 이건 500억 원짜리다. 복규는 이 사실을 모른다. 복규가 사는 201호 어딘 가에 황금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몇몇은 복규의 애인으로, 친구로, 빌라의 주민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 tvN <위기일발 풍년빌라> ⓒtvN
어수룩한 복규를 꾀기 위한 암투가 전개되면서 이야기는 B급 코미디로 흘러간다. 의상디자이너를 가장한 미모의 업소언니 윤서린 (이보영), 폭력대행업체 사장 박태촌(백윤식), 복규 아버지와 불륜관계였던 빌라반장 김추자, 복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봤던 알코올 중독자 최성식, 위장부부로 101호에 이사 오는 위장 부부 등 이들의 본성은 은근 슬쩍 드러난다. 때로는 어리바리한 복규에게 당하기도 한다.

〈위기일발 풍년빌라〉의 극본을 쓴 장항준 감독은 그동안 영화 〈라이터를 켜라〉, 〈귀신이 산다〉, 〈불어라 봄바람〉 등을 통해 어수룩한 주인공이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부조리한 웃음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풍년빌라’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사랑과 돈, 이 가운데 한쪽을 결핍시킴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거짓과 사기와 불륜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드라마는 부조리한 현실을 기반으로 하며 웃음의 카타리시스를 선사한다. 여기에 공포가 덧입혀지며 ‘스릴러 코미디’라는 오묘한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박연선 작가의 〈얼렁뚱땅 흥신소〉(2007)가 시도했던 ‘고종 황제의 숨겨진 보물찾기’라는 미션은 목표에 대한 극성이 강해 넓은 시청자 층을 사로잡진 못했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웃음의 극성을 좀 더 가미해 진일보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이지만 굳이 비교를 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뿌리 내리기 힘든 스릴러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이 어렵다며 한탄하는 동시에 그래도 믿을 건 아파트 밖에 없다는 믿음. 대형마트로 인해 시장이 죽어간다면서도 주말마다 카트에 한 가득 짐을 실어 나르는 본능적 행동. 내려올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 스릴러 같은 물가와 집값에 욕을 하면서도 로또 같은 요행과 기적을 기대하며 코미디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이 바로 ‘풍년빌라’ 주민은 아닐까. 건설업자 출신인 그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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