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보수신문 ‘북한 도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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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비평] 천안함 침몰 보도 … 대형 참사 ‘침착함’ 유지해야

천안함이 침몰한 지 31일로 엿새째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사고의 실체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군 당국의 제한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언론 보도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섣부른 기사는 논란을 일으키거나 오보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언론계 내부에서는 대형 참사일수록 언론이 ‘침착함’을 유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군의 정보통제로 취재가 쉽지는 않지만, 언론이 나서 시청자나 독자를 흥분시키거나 위기감을 조성하는 기사를 쏟아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 26일 밤, 천안한 침몰 소식을 최초 보도한 지상파 방송 3사는 확인도 안 된 ‘북한 공격설’에 무게를 실으며 불필요한 위기감을 조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SBS는 이날 오후 11시 40분경 예능 프로그램을 방송하던 도중 ‘2함대 소속 초계함 1척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이라는 자막을 속보로 내보냈다.

▲ SBS 3월 26일 밤 <스타부부쇼 자기야> 방송 도중 천안함 침몰 속보를 내보냈다. ⓒSBS
KBS도 이날 밤 11시부터 방송된 <뉴스라인> 끝 부분에 박성범 앵커가 “침몰 원인이 북한 공격으로 추정된다는데 어느 정도 파악됐는지 알아본다”고 언급했고, 기자의 리포트 도중에도 ‘북한 공격으로 침몰 추정’이라는 제목이 화면에 등장했다.

MBC도 이날 밤 12시 40분부터 방송된 <뉴스24>에서 김주하 앵커가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비슷한 시각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 반잠수정 침몰시킨 듯”이라는 글을 올렸다 정정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SBS노조의 한 관계자는 “속보 자막 경쟁에서 중요한 게 신속성과 신뢰성인데, 신속성만 중요시하며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쓰는 경우가 있다”며 “침몰한 지 한 두 시간 밖에 안됐는데 북한의 공격을 단정하는 자막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군 당국이 명확치 않은 설명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언론 보도도 덩달아 흔들렸다. 방송 뉴스는 사고 초기 군 당국 발표에 따라 침몰 원인을 “배 뒤쪽 바닥에 구멍이 났고, 내부 폭발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으나, 28일 군이 애매하게 입장을 바꾸자 이를 따라 “함체가 두 동강 나 뒷부분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고 수정했다.

이에 SBS는 28일 <8뉴스>에서 “사고 사흘째인 오늘, 선체의 함수와 함미 부분이 7.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자 국방부는 애매하게 태도를 바꿨다”며 “군의 대응이 신뢰감을 주지 못하다 보니 시중에서 검증되지 않은 여러 설이 나도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양효경 MBC노조 보도 민실위 간사는 “첫날은 정보량이 적은 특수상황이었기 때문에 군 당국의 발언을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그러나 군이나 정부 관계자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쓴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 3월 28일 KBS <뉴스9> ⓒKBS
성급한 보도로 ‘오보’ 판명이 난 뉴스도 있다. KBS는 지난 28일 <뉴스9> 첫 소식으로 해경의 분석이라며 “천안함이 물이 새는 사고를 겪은 뒤 5km를 떠내려가 반파됐다”고 보도해 정부 발표를 반박했다. 그러나 이날 밤 천안함의 함미가 사고지점 부근에서 발견되면서 KBS의 보도는 오보로 판명됐다.

최성원 KBS노동조합 공정방송실장은 “해경 발표를 잘못 인용한 오보는 침착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보도준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혼란을 부추기는 보도였다”며 “언론도 사안의 시급성 때문에 쏟아내기식 보도를 하다 보니,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전하면서 사태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또 “흥분한 유가족의 절규 등이 그대로 뉴스 화면으로 나가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면서 “방송이 차분하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고 수습이나 전반적인 상황을 안정감 있게 보도해야지, 뉴스를 통해 오히려 국민들은 흥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천안호 침몰 초기 청와대와 정부는 ‘북한 공격설’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지난 29일 김태영 국방장관이 ‘북한 개입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자, 이튿날 보수신문들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북한 도발의 가능성을 다시 들고 나왔다.

조선일보는 고위 탈북자들의 말을 빌어 천안호 침몰이 “북한 해상저격부대의 작전일 수 있다”고 30일 보도했다. 조선은 이날 사설에서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결정해야 할 고비를 맞게 된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전시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도 각오해야 한다”고 긴장감을 부추겼다.

▲ 조선일보 3월 30일자 5면.
중앙일보 문창극 대기자도 같은날 자신의 칼럼에서 “북한의 짓이라고 가정해 보자”며 “조사 결과가 그렇게 나와도 북한은 부인을 할 것이다. 상대가 부인하는데 우리가 보복할 수 있을까? 만약 보복한다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사태가 겁이 나 청와대가 앞장서 북한 연계성을 축소하는 발언을 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KBS의 한 기자는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일부 신문이 지속적으로 탈북자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을 억지로 연관시키는 것은 천안함 사고 원인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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