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사건'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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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남내원 EBS 〈다큐프라임〉 PD

부산에서 여중생을 성폭행한 후 무참하게 살해한 용의자 김길태는 어느새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사건 후 쏟아진 엄청난 보도량, 화학적 거세부터 사형제 부활 논의까지의 강력한 처벌 요구. 이번에는 달라야한다는 주장이 넘쳐났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이다. 사건발생부터 용의자 검거까지의 보도 내용은 매번 동일한 패턴의 반복이고, 인형극을 통해 아이들에게 “싫어요, 안돼요”라는 기계적 멘트를 외우게 하는 대응 또한 구태의연하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빼고는 어떤 차이도 발견할 수 없는 사건의 동어반복. 보도 내용의 동어반복. 사회적 논의의 동어반복. 그 속에서 짙은 공허감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냉정하게 말해 김길태 사건은 나와 무관하다. 저 멀리 부산의 가난한 지역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고, 불우한 성장 배경을 가진 미치광이 사이코패스의 범행일 뿐이다. 난 단지 그 범행의 반인륜성에 분노를 표출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범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믿음에 동의를 표시하면 된다. 내 아이의 안전과는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지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공허함의 출발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내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구체적인 행동지침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범죄 예방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내 아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교육과 행동지침이야말로 사회적 사건을 내 문제로 인식하는 출발점은 아닐까? 우리의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안전대책들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의 법과 제도를 기계적으로 모방해 들여오는 낯 뜨거운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미국의 헬핑 핸드(Helping Hand)제도를 모방해 들여온 ‘아동안전지킴이집’. 하지만 정작 ‘아동안전지킴이집’으로 지정된 약국 아줌마, 문방구 아저씨들은 자신이 뭘 하는 건지, 뭘 해야 하는 건지 알지 못한다. 안양의 혜진이, 예슬이 사건 이후 경찰이 찾아와 무작정 위촉장과 노란색 입간판을 세워 놓고 갔을 뿐이다. 이 분들에 대한 신원조회나 체계적 교육은 없다.

아이들이 정작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골목길에는 아동 안전을 위한 어떠한 장치도 없다. 또한 조금만 자료를 뒤적여보면 “싫어요, 안돼요”라고 외치는 교육이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입증하는 수많은 연구결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1년에 한번 대규모 강당에 모여 이런 교육을 받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아이들의 안전과 관련된 수많은 대책들이 이렇게 관성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 남내원 EBS 〈다큐프라임〉 PD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아이들을 함께 모아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일본의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범죄를 피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미국 예방 교육의 취지에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정성현, 조두순, 김길태로 이어지는 아동대상범죄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앞으로 일어날 아동대상범죄에 대해 분노만 할 것인가?
나와 결부된, 작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생각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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