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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88만원 세대 저자)
최근에 녹색당 언제 만드느냐는 질문을 연거푸 받았다. 방송인도 있고, 일반 시민도 있고, 고등학생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녹색평화당이라는 이름으로 녹색당이 잠깐 있었는데, 2002년 지방선거에서 아주 간발의 차이로 전주 지역에서 광역의원을 배출하는데 실패했었다. 촛불집회 이후로 청와대로 간 임삼진씨가 녹색평화당 이름으로 서울시장 후보가 된 적도 있었다. 그는 전태일의 매제이다.

공식적인 창당은 이게 유일하고, 2003년 이후로 녹색정치준비모임, 일명 녹준에서 초록정치연대로 전환한 조직이 있었는데,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일련의 환경 활동가와 지역 활동가들이 기초의원으로 당선된 적이 있었고, 이들을 지원하면서 창당을 준비하기 위한 조직이 만들어졌었다. 나는 이 조직에서 정책실장을 맡았었던 적이 있다. 최근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하였는데, 이 사회당 연정에 녹색당도 참여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5% 내외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으며, 연정이 한 축 정도로 활동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녹색당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생겨나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당시에 우리는 지금 녹색당 못 만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얘기를 종종 했었는데, 도저히 창당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지금 정부에서 ‘녹색성장’이라는 황당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4대강이라는 토건 사업을 녹색으로 포장하는 것도, 그 때 녹색당을 만들지 못해서 생겨난 일이기도 하다. 멀쩡한 남의 당 이름을 갖다 토건 포장지로 쓰는 일 정도는 막았을 것이다.

모든 당은 지지 세력과 핵심활동가가 존재하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생겨나기도 하고 안 생겨나기도 한다. 한나라당은 경제적 지배세력이 지지 세력이다. 민주당은 전통적인 호남세력과 80년대의 학생운동 세력이 결합된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업화의 역사가 짧다보니, 노동자 계급을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들이 한국에서는 아직 수권세력이 되지를 못했다.

그렇다면 녹색당은? 90년대 중반 즈음에 한국에도 환경활동가 혹은 생태활동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지방자치의 확대와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에 의한 생활정치의 영역들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그 수는? 정당법에 의하면 광역 단위로 1000명씩 5개, 즉 5000명의 당원을 모으면 정당을 만들 수 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그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는데, 나머지 3개를 모을 수가 없었다.

▲ 뉴질랜드 녹색당 (http://www.greens.org.nz/)
광주에서는 민주당 아닌 정당을 만든다고 하면 배신자라고 하고, 대구에서 한나라당 아닌 당을 만든다고 하면 ‘미친놈’ 소리한다. 울산에서 민노당 아닌 당을 만든다고 하면, 제 정신이냐는 소리를 듣게 된다. 상황은 그랬다. 내가 도저히 지금 우리나라에서 녹색당을 만들기가 너무 힘들다고 포기한 것이 2006년의 일이다.

다시 4년이 흘렀다. 생태도시로의 전환을 고민하는 울산, 토건이 아닌, 골프장이 아닌 지역경제의 대안을 생각하는 제주, 이 정도에서는 아마 1000명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도시는? 당시에는 여수가 녹색당의 한 축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었는데, 여수 엑스포를 기점으로 여수도 토건도시 분위기로 많이 흘러갔다. 전주는 새만금 이후로 녹색당 ‘녹’자도 꺼내기 어려워졌다.

아마 다섯 번째 도시는 부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토건경제가 지역경제에서는 한 물 가면서 부산에서도 생태도시 혹은 생태적 전환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흐름으로 보면, 콘크리트 토건경제가 클라이맥스로 가는 지금, 4년 전에 비하면 녹색당을 지지하고 당원이 될 사람이 늘어나기는 한 것 같다. 세력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고, 4~5% 정도의 지지율로 비례대표 국회의원 2~3명은 만들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러나 녹색당이 생기지 않는 것은, 핵심 활동가 그룹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민노당은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기반 조직이 녹색당에는 아직 없다. 그리고 더 큰 고민은, 20대 활동가들이 더 이상 집단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보신당이나 민노당도 이런 게 고민인 것 같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노동자 정치가 벌써 노후화하고 있는데, 그보다 훨씬 뒤에 시작한 생태운동도 슬슬 고령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에서 팽팽하고 날 선듯한 20대를 만나보기가 쉽지 않다. 내가 생태운동을 만들자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설쳐대던 나이도 20대였다. 녹색당보다는 차라리 청년당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어차피 알바 인생이라면, 득표율 2% 넘겨서 수 억원의 정당보조금을 받는 편이 경제적으로도 더 가능성이 높다. 그야말로 일자리 창출이다. 한국 녹색당의 고민은, 지금은 20대의 정치참여와 사회활동 참여에 대한 고민과 어느 정도 겹친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렇다면 이걸 합쳐서 ‘청년녹색당’ 혹은 ‘녹색청년당’ 같은 것을 만들어본다면? 논리적으로는 가능하기는 하지만, 역시 “누가?”의 문제가 남는다. 영화 <친구>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니가 가라,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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