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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리뷰]SBS 주말 특별기획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작가는 드라마계의 ‘스페셜 원’이다. 노희경부터 인정옥까지 수많은 폐인들을 거느린 드라마 작가들은 여럿 있지만, 김수현 작가만큼 오랫동안 폭넓게 대중과 소통하는 작가는 드물다. 혹자는 김 작가 특유의 속사포같이 빠르고 수다스러운 대사에 거부감을 나타내곤 하지만, 그는 소위 ‘막장’ 코드나 클리셰 없이도 자신의 이름 석 자만으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이를 충족시키는 거의 유일한 작가다. 때문에 그는 종종 시청률 침체에 시달리는 방송사의 구원투수로 투입되고, 그때마다 100%에 가까운 성공률을 자랑한다.

그래서 ‘거장’으로 불리는 김수현 작가는 대가족을 중심으로 한 홈드라마부터 격정적인 멜로까지 소화해내는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희를 바라보는 이 노작가가 드라마 한편, 한편을 통해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김수현 작가의 불륜극’으로 화제를 모았던 〈내 남자의 여자〉에서 그는 불륜 자체가 아닌 홀로서기의 의미를 그렸고, 〈엄마가 뿔났다〉에선 ‘엄마의 자아 찾기’를 통해 사회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통속극을 뻔한 통속극이 아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김수현의 힘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연출 정을영, 토·일 밤 10시)로 새로운 기대감을 던져주고 있다.

▲ SBS 주말 특별기획 '인생은 아름다워' ⓒSBS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재혼 가정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다. 김수현의 홈드라마가 으레 그렇듯이 3대(정확히는 증손녀까지 4대)에 걸쳐 모여 사는 대가족이 등장한다. 평생 여섯 명의 부인을 거느리며 살아온 노부(최정훈)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평온한 가족에 풍파가 일고, 숨은 사연과 갈등이 드러난다.

가족 구성원들의 이름조차 외우기 힘들 정도로 드라마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단 1~2회 만에 캐릭터와 인물간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성공한다. 남편 수일(이민우)에게 “변기에 앉아서 싸!”라고 쏘아붙이는 지혜(우희진)의 대사에선 완벽주의가, 아들 태섭(송창의)의 결혼에 집착하는 민재에게선 계모로서의 자격지심이 드러나고, 아버지를 모시는 일을 두고 갈등한 끝에 “나도 장남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는 병태에게선 장남으로서의 책임감과 깊은 고민이 엿보인다.

▲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목받는 게이 커플 태섭(송창의, 왼쪽)과 경수(이상우). ⓒSBS
이 드라마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바로 태섭과 경수(이상우)의 관계다. 인물 좋고 성격 좋은 내과 의사 태섭은 집안에서 결혼 재촉을 받는 동시에 한 여성으로부터 구애를 받지만, 정작 그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 태섭을 가족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사실 그는 게이다. 김수현 작가는 지난 5회분에서 에두르지 않고 “나는 게이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썼다. 그런 태섭이 경수의 전화에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집 앞에서 서로 먼저 가라며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은 천생 커플에 다름 아니다.

두 사람을 보며 어떤 이들은 응원을 보내고, 또 어떤 이들은 “가족들이 다 보는 드라마에 웬 동성애 코드냐”며 흥분한다. 이들의 주장처럼 홈드라마에 동성애가 그려져선 안 될 이유는 전혀 없지만, 소위 ‘동성애 코드’란 것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말 그대로 ‘가족 드라마’에서 금기의 소재를 그린다는 점에서 작가의 뚝심이 읽힌다.

김수현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별다른 의미 부여는 말라면서도 “경수, 태섭이 너무 어필되는 게 좀 부담”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주말 연속극에 게이 커플이 등장했다는 것을 인권운동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오버’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태섭의 성정체성은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측면보다 가족 안에서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고 화해에 근접하는 과정으로 그려질 가능성이 크다. 일부 언론은 이를 ‘찬반 논란’이니 ‘민망하다’는 표현을 써가며 거부감을 자극하지만, 김수현 작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 뚝심이, 결코 진부하지 않은 이 거장의 진보가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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