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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의 영화이야기]

▲ MBC FM <이주연의 영화음악> 진행자, 이주연 아나운서
“여기 바로, 내 손에! 205명의 공산당원의 명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국무부에서 미국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50년 2월 9일.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한 묶음의 종이를 뿌리며 매카시가 폭탄선언을 했다. 바로 직전에는 중국이 공산화되었고 직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때였다.

매카시가 뿌린 종이에는 별것이 적혀있지 않았고 그나마 205명이라고 했던 공산당원의 숫자도 얼마 후 57명이라고 번복했으며 그 면면도 퇴직자를 비롯해 정책 입안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는 정치, 문화, 예술계 등 사회 곳곳으로 바이러스처럼 확산되었고 사람들은 의심과 불안으로 서로를 불신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공산주의자와 친 공산주의자를 미국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마녀사냥하는 매카시의 선동과 그에 따르는 세력이 날뛰었지만 표적이 될까 두려워 침묵하고 있었다. 언론인들도 국가에 대한 충성서약을 하던 시절이었다.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워, 혹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마구 잡아들이고 사회적으로 숙청을 행했던 매카시의 범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범죄는 ‘공포를 확산시켰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눈을 감고 못 본 척, 귀를 막고 못 들은 척 했던 시대.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은 1950년대 초반 미국 전역에 불어 닥쳤던 이 매카시 광풍에 맞서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싸웠던 머로우의 실화를 그리고 있다.

뉴스 다큐멘터리 〈SEE IT NOW〉를 진행하는 CBS의 앵커 에드워드 R. 머로우는 공군 마일로 라둘로비치가 재판도 없이 전역당한 후 공산주의자로 추정되는 아버지와 누이를 고발하라는 강압을 받았다는 지방신문 기사를 보고 이를 보도하기로 결정한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머로우와 스텝은 용기를 냈고 그들은 그때까지 논평이 없었던 프로그램의 전례를 깨고 어느 한 ‘편’을 들기로 결정한다.

▲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
사회적 광풍은 그 자체로 협박과 공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진실뿐이다. 매카시 의원의 마녀사냥에 대해서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고, 우리 모두 이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던 머로우.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생각과 전달’이었다. 그 것이 없다면 텔레비전은 단순한 바보상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방송이 이대로 가면 우리는 역사의 비난을 받을 것이며,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생각과 정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맙시다. ...단 한 기자의 의견이라도 논박하려면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TV는 지식을 전합니다. 깨달음도, 영감도 줍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최소한의 참고용으로 쓰일 때만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TV는 번쩍이는 바보상자에 불과합니다. 좋은 밤 되시고, 행운을 빕니다. (Good night, and good luck.)”

편안한 밤을 빌어주는 이 인사가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아마도 편안할 수 없는 시대를 살기 때문일 것이다. 60년 전 미국의 사회도 그리고 2010년 한국 사회도. 그래서 그의 말은 여전히 슬프게만 들린다.

슬픈 봄. 지난번 칼럼에 〈봄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게재하면서 “앗, 이미 봄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는데 너무 성급했다. 예년 같으면 개나리, 진달래가 지천으로 흐드러져야 할 요즘 서울 시내에 노란, 빨간 꽃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기온도 낮아 쌀쌀하고 심지어 원래 이번 주 예정되어 있던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축제’는 봉오리도 맺지 않은 벚나무들 때문에 제대로 개최되지 않고 있다. 여의도의 봄은 아직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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