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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

|contsmark0|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contsmark1|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contsmark2|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contsmark3|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contsmark4|흰 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 구름
|contsmark5|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contsmark6|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contsmark7|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contsmark8|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contsmark9|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contsmark10|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
|contsmark11|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contsmark12|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contsmark13|흰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contsmark14|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contsmark15|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contsmark16|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contsmark17|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contsmark18|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contsmark19|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contsmark20|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contsmark21|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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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문승현 작사·작곡 ‘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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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1|벌써 십 몇 년 전 일인데 대학생퀴즈프로 연출할 때 좀 특이하게 보이려고 끄트머리에 늘 노래 하나를 붙였거든. 출연자들 얼굴 다시 보여주면서 배경음악으로 노래를 심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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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4|그 첫 번째 노래가 바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사계’였어. 일단 멜로디가 단순하고 박자도 경쾌하지. 무슨 동요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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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7|난 원래 단순하고 경쾌한 걸 좋아하거든. 근데 가사 좀 유심히 들어 봐. 대단히 우울하고 심각한 얘길 하
|contsmark38|고 있지. 전화 많이 받았어. 일일이 다 대답해 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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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1|그 덕에 판도 꽤 팔렸다고 하더라구. 그 판에 기막힌 노래들 많았거든.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뭐 그런 노래들 말이야.
|contsmark42|몇 달 동안 잘 나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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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5|어느 날 국장이 조용히 부르더라구. “어이 그게 무슨 노래야. 뭐가 잘 돌아간다는 그 노래 말이야.” “아 그 노래요. 제목은 사계구요. 물론 비발디가 만든 건 아니죠. 노찾사라는 그룹이 부른 노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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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8|“노찾사? 영언가?” “아니 순우리말인데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걸 줄인 거죠.” “그래 좋은데 아무튼 내가 말한 그거 말이야. 도대체 뭐가 돈다는 거야?” “아 그거요. 저 미싱이 잘 돈다는 건데요. 미싱 아시잖아요. 부라더 미싱 뭐 그런 거.” “미싱 미싱이라. 내 귀엔 그냥 세상이 잘 돌아간다고 들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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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1|어이. 그 노래 바꾸는 게 어때? 그 프로에 공장 얘긴 좀 안 맞잖아.” “글쎄요. 누가 그렇게 유심히 듣겠습니까? 그냥 국장님 말씀대로 세상이 잘 돌아가나 보다 하지 않을까요?” 국장이 더 이상 말을 않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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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4|이 자식이 날 놀리고 있군 하는 표정이었어. 그 뒤로도 좀 버티다가 또 한번 부장을 통해 얘기하길래 할 수 없이 노래를 바꿨어. 뭐 조직은 원래 그런 거잖아. 단맛도 보고 쓴맛도 보고. 바뀐 노래 제목은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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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7|역시 노찾사가 부른 노래였지. 프로를 어물쩍 보다 보면 정말 일요일이 다 가고 있었거든. 물론 내 청춘도 가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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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0|세상엔 돈을 찾는 사람도 많고 권력을 찾는 사람도 많고 명예를 찾는 사람도 많지. 물론 쾌락을 찾는 사람도 부지기수고. 근데 이 사람들은 하필 노래를 찾는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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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3|무지하게 특이했어. 애초에 갖고 있다가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놀다가 빼앗긴 걸까. 졸다가 흘려버린 걸까. 이럴 때 누구는 화만 내다 제풀에 주저앉고 누구는 잽싸게 체념하는데 이 사람들은 그걸 기어이 찾아보겠다는 거 아냐. 그들이 찾고 싶어하는 노래와 세상이 솔직히 궁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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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6|‘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꽃들 나비들 그리고 바람 구름에서 낙엽과 흰눈까지 정말 달력 같은 풍경들을 무덤덤하게 보여 주지. 그 풍경은 기막히게 흐드러진데 노래 속의 사람들은 줄창 미싱만 돌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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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9|청춘이 저물도록 미싱을 돌린대잖아. 설마 그들이 취미로 미싱을 돌리는 건 아니겠지. 내 짐작에 이 노래의 뿌리는 김민기가 만들고 송창식이 부른 ‘강변에서’야. 거기 이런 풍경이 숨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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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2|강 건너 공장의 굴뚝엔 시커먼 연기가 펴오르고 순이네 뎅그런 굴뚝엔 파란 실오라기 펴오른다. 너무 대조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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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5| 노동이 신성한 거라고 누가 얘기했지? 산업역군에 근대화의 기수라. 말은 근사하잖아. 근데 강을 사이에 두고 너무 차이가 나는 거야. 그 노래에서 순이는 밤이 이슥하도록 공장에서 돌아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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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8|그녀가 다른 데로 빠진 건 아닐까. 불빛 찬란한 룸에서 에라 나는 평생 미싱만 돌리란 법 있나 하며 가짜 웃음을 팔고 있는 거 아닌지. 그런 고민이 그 노래에 웅크리고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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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81|꽃놀이도 좋고 별구경도 좋지. 하지만 강 하나 사이에 두고 누구는 콧노래 흥얼댈 때 누군가는 뭐 빠지게 미싱을 돌린다는 걸 기억하기 바래. 무슨 봉창 두드리느냐고? 가끔은 봉창도 두드릴 필요 있지. 애국가 봉창만 하다가 애꿎은 청춘 저물어 날리는 거보다는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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