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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유병선 독립PD

사실과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이 5월의 말말말… 설설설… 시끄러워 죽겠다.

해외취재가 많던 시절, 바쁜 취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하루 정도의 안식. 절대적 고요 또는 편안한 명상의 시간은 의외로 번잡하고 시끄러운 환경 속에 존재했다. 그 장소가 제 3국의 시장통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다. 그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말들은 언어가 아닌 주변소음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또 하나의 즐거운 일이 있다. 절대빈곤 수준인 대한민국 영상 아카이브와 비교해 무궁한 영상물의 보고(寶庫)(?)를 어슬렁거릴 때면 개인적인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수많은 불법복제 DVD창고에서 입꼬리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 보물창고에서 건진 하나가 바로 갓프리 레지오(Godfrey Reggio) 감독의 <코이야니스카시>다.

▲ <코야니스카시> (감독 갓프리 레지오)
카시(Qatsi) 3부작의 첫 작품인 <코야니스카시>란 미국 호피족 인디언 말로 ‘균형 잃은 삶(Life Out of Balance)’이라는 뜻이다. 비언어다큐멘터리(Non-verbal Documentary)로 분류되며 실험다큐, 아방가르드 다큐, 시적 다큐로도 분류된다. 내러티브도 대사도 없이 87분 동안 음악과 영상으로만 되어있는 이 영화는 시끄러운 주장도, 직접적인 메시지도 없다. 다만 행간에서 읽혀지는 인간에 대한 사유와 철학은 그 어떤 메시지보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고대 인디언들이 그린 벽화에서 시작한다. 이후 광활하고 경이로운 대자연 -대협곡의 웅장함, 역동적인 구름, 사막의 유려한 풍경, 폭포의 물결 등- 을 고속촬영으로 담아낸다. 관객이 그 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한없이 도취될 즈음,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는 광산, 거대한 트럭 주위로 내뿜는 검은 연기, 사막위로 끝없이 이어지는 송유관과 송전선 등 인간이 개발하는 자연을 그린다. 이후 원자폭탄 실험, 혈관처럼 이어진 고속도로위의 차량들, 자동화된 공장, 그 속에서 개미떼처럼 이합집산하는 사람들, 폭파되는 낡은 건물들, 미디어를 통해 화려하게 쏟아지는 이미지들, 도시빈민, 마지막으로 폭발하는 우주선과 마주한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음악과 함께,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도시를 묘사하며 인간이 만든 환경 속에서 속도와 파괴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현대문명이 그려진다. 갓프리 레지오 감독은 인류 문명의 이기와 그 속에서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을 관객과 조우하게 하여, 직접적인 메시지보다는 강렬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 유병선 독립PD
비인간적인 속도로 달려가는 현대소비사회, 매스미디어가 메시지인 사회 속에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분명 ‘균형을 잃은 삶’으로 보인다. 우리는 누구와 무엇을 위해 공존하는지, 또한 서로 공존하는 관계가 아니라 소외당하고 소외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이 영화를 통해 사유하는 계기가 될까?

남대문이 무너질 때 그랬고, 천안함이 가라앉을 때 그랬고, 4대강이 파헤쳐질 때 마음속의 롱테이크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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