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시대’ 보헤미안을 주목한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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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시대’ 보헤미안을 주목한 ‘놀러와’
[TV에세이] MBC ‘놀러와’를 주목하는 이유
  • 민임동기 기자
  • 승인 2010.07.13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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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예능 등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대세인 시대에 ‘보헤미안 뮤지션’을 주목하기란 쉽지 않다. 라디오는 매체 특성상 ‘보헤미안 뮤지션’을 진행자로 내세우기도 하고, 언더그라운드나 ‘아웃사이더’ 뮤지션들을 가끔 스튜디오로 불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TV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보헤미안 뮤지션’들은 요즘 TV 게스트의 필수인 ‘예능감’이 없다. 사전에 제작진이 ‘예능감’을 요구한다 해도 이걸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대부분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관이 있는 데다, 음악적 칼라 또한 분명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방식은 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혹 예능에서 이들의 음악세계를 조명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다큐라면 몰라도 ‘대한민국 예능’에서 이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놀러와’가 ‘보헤미안 뮤지션’에게 접근하는 방식 

▲ 12일 방송된 MBC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 화면캡쳐.
12일 방송된 MBC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를 주목한 것은 흔히 말하는 ‘예능의 정석’을 〈놀러와〉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놀러와〉는 ‘보헤미안 뮤지션 스페셜’을 주제로 강산에, 하찌, 바비킴, 이상은을 게스트로 초대했다. 보헤미안이 뭔가. “사회적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 아닌가.

그런데 ‘사회적 관습’에 철저한 예능 프로그램이 이들을 게스트로 불러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획 자체가 성립하기 힘든, 아니 설사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더라도 ‘걸러졌을’ 가능성이 높은 출연진들을 〈놀러와〉가 TV 앞에 불러낸 것이다. KBS 〈다큐멘터리 3일〉이 아닌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서 말이다.

체 게바라의 혁명정신까지 ‘자본주의화’ 시키는 마당에 이들을 예능에서 볼 수 있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힐난할 수도 있다. 맞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건 이들이 출연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놀러와〉가 ‘보헤미안 뮤지션’에게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놀러와〉의 유재석·김원희 두 MC는 이들에게 망가질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억지 웃음을 유발하지도 않았다. 물론 과잉행동도 자제했다.

대신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돈’에 대한 생각을 유쾌하게 풀어냈고, 각 자가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생각과 ‘인생철학’을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TV에서 접하기 힘든 어쿠스틱 사운드를 바탕으로 ‘보헤미안 뮤지션의 음악’이 적절히 배치됐고, 전반적인 진행은 ‘보헤미안 게스트’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날 〈놀러와〉에서의 웃음이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돌에 대세인 시대, ‘보헤미안 뮤지션’의 의미는

▲ 12일 방송된 MBC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 화면캡쳐.
무엇보다 이날 〈놀러와〉가  보여준 가장 큰 미덕은 다양성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아이돌이 대세를 장식한 이후 ‘아이돌 아닌 음악’은 극히 일부 가수를 제외하곤 TV에서 전파를 타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됐다. MBC 〈음악여행 라라라〉와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그나마 주류매체인 TV에서 ‘음악적 다양성’을 구현하고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돌 대세 분위기’는 예능까지 ‘아이돌 분위기’로 만들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이 ‘집단 출연진’과 같은 물량주의로 흐르고 있는 것도 이런 ‘아이돌 대세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물론 MBC 〈세바퀴〉처럼 ‘세대간 소통’을 콘셉트로 내세우는 예능도 있지만, 여기엔 ‘주목받는 아이돌과 하염없이 망가져야 하는 중장년층’이라는 전제가 있다. 아직까지 이 전제조건은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닌 필요충분조건이다.

최근 〈놀러와〉가 보여주는 ‘독특한 기획력’과 ‘당돌한 자신감’을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놀러와〉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주류 범위내의 웃음을 추구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비주류적이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을 초대손님으로 불러내 때론 진지하게 때론 담담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예능스럽지 않은 출연진’이 억지로 망가지지 않아도 적정한 웃음과 토크가 가능하다는 걸 〈놀러와〉가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12일 방송에서 이상은이 “여기 예능프로 맞아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이 말이 주는 의미 - 무척 상징적이었다. 〈놀러와〉는 그만큼 스스로 진화화고 있는 셈이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도 ‘스펙쌓기’에 올인하는 시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놀러와〉의 새로운 실험이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그건 정말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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