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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한지수 독립 PD

유투브에 재미있는 공고가 떴다. 7월 24일 하루 동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동시에 카메라에 담아 지구인의 삶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Life in a day’라는 제목의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네티즌들이 24일 하루 동안 촬영해서 올린 동영상을 취합해서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다.

총괄 프로듀서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고 책임 디렉터는 케빈 맥도널드지만 www.youtube.com/lifeinaday에 동영상을 올려 채택된 네티즌들은 모두 공동 연출자로 크레딧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그간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됐거나 부분적으로 시도된 바 있는 작업이 좀 더 거대한 규모에서 어떻게 실행되는지 지켜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라고 하겠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는 2011년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존의 영화 제작방식에도 한 획을 그을만한 실험이다.

우리나라 네티즌들도 관심이 지대하다. 과연 우리가 포착하여 발신할 2010년 7월 24일 대한민국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문득 몇 년 전에 만났던 <뉴욕 타임즈>의 특파원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서울에 특파되었다가 십수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한국을 떠나지 못하고 주재기자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뭔가 사태가 정리되어 떠나야지 하면 또 일이 생기고 다시 취재를 마치고 떠날 만하면 또 일이 생기고 하여 계속 머물렀다고. 그것도 그냥 단순한 이슈가 아니라 취재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역사에 길이 기록될, 세계 정세에 밀접하게 연관된 대형 이슈들이라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웬지 그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전시도 아닌데 군함이 침몰하고 독재치하도 아닌데 경찰이 방송 대본을 사전 검열하고 군사정권도 아닌데 백주대낮에 민간인 사찰이 행해지는, 금세기에 찾기 힘든 이 아이러니한 현장을 두고 어느 기자의 발길이 쉽게 떨어지겠는가?

그래서 궁금하다. 걱정스럽기도 하다. 만천하에 공개되고 세계인이 공유할 ‘Life in a day'에 담겨질 우리 삶의 현실이. 굳이 타입 캠슐로 보관까지 하겠다니 이 시절을 살아가는 일원으로 대대로 망신살이 뻗치게 생겼다. 몹시 부끄럽긴 하지만 그러나 한편 차라리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로 망각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게 역사라면 이 모든 현실을 이토록 허약한 기억속이 아니라 강력한 기록저장매체에 담아 웹상에 업로드 시켜두는 편이 좋을테니까. 오늘의 부끄러움이 낱낱이 생생한 이미지로 저장되고 누구나 수시로 재생해볼 수 있다면, 그래서 한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전 사회 공동체의 기억으로 보존될 수 있다면 이 악순환의 역사는 반복을 멈출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 한지수 독립PD
새삼 희망과 용기가 생긴다. 이미지와 영상에 익숙한 세대, 소셜 네트워킹이 하루 일과인 세대, 오픈 플랫폼을 누비는 ‘실력 있는 아마추어’들이 냉소와 무관심에 익숙해진 기성 프로페셔널보다 더 맑은 눈으로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우리의 일상에 포커스를 맞추는 시절이다, 지금은. 나도 나이 탓인지, 좌절이 학습된 탓인지 점점 흐릿해져가는 눈을 다시 부벼 뜨고 세상을 똑바로 응시해야겠다. ‘어설픈 프로’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더구나 그 어느 때보다 ‘PD의 눈’이 절실한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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