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 성희롱 보도’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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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성희롱 보도’의 정치학
[민임동기의 수다떨기] 중앙일보 보도에서 짚어야 할 몇 가지
  • 민임동기 기자
  • 승인 2010.07.2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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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단독보도를 폄훼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사안입니다. 그동안 중앙일보가 한나라당과 MB정부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플러스 점수’를 줘야 합니다. 7·28 재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강용석 의원 성희롱 발언’ 보도가 나갔을 경우 한나라당과 MB정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런 점을 감안하면 중앙일보 보도에 박수를 아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중앙일보가 ‘강용석 의원 성희롱 발언’ 보도를 왜 강행했을까 하는 것이죠. 물론 관련 내용을 직접 취재한 기자의 진정성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허나 민감한 시기에 이처럼 민감한 내용이 보도되기까지는 기자의 진정성 외에 다른 요인이 더 많이 작용한다고 봐야 합니다. 중앙일보 내부 의사결정과정이 더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중앙일보 단독보도 이면을 짚어야 하는 이유 

▲ 중앙일보 7월20일자 20면.
제가 중앙일보 보도책임자가 아닌 이상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보도 자체를 두고 평가를 하면 됐지 이면을 살피는 일이 굳이 필요하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이번 ‘강용석 성희롱 발언보도’는 기사 자체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이면을 동시에 헤아리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중앙일보 보도가 가지는 ‘정치학’을 종합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강용석 의원의 ‘전력’입니다.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강 의원은 1998년부터 5년 동안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을 지냈는데, 2000년과 2001년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였습니다. 특히 강 의원은 2001년에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와 장녀 부진씨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요.

네티즌들은 이 같은 ‘전력’이 중앙일보 보도의 배경이 된 게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삼성과 중앙일보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했을 때 일종의 보복성(?) 차원에서 보도가 나간 게 아니냐는 것이죠. 글쎄요. 일견 타당한 듯 보이지만 저는 이런 이유 때문에 중앙일보가 이번 보도를 결정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단순한 보복’과 ‘보도가 미치는 파장’을 저울질 못할 만큼 중앙일보가 ‘바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 입장에서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저는 삼성이라는 요인보다는 ‘헤게모니 차원’에서 보는 게 더 정확할 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강용석 성희롱 발언 보도’가 나갈 경우 재보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여당에게 직접 타격을 입히지만, 중앙일보 헤게모니가 더 강화되는 결과가 나온다면? 보도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이번 보도는 중앙일보 입장에서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 중앙일보 7월21일자 1면.
사견이긴 합니다만 중앙일보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건 ‘매체 헤게모니’가 아닐까 싶네요. 조선일보의 경우 최근 여권 내 선진연대의 인사전횡 등을 집중 파헤치면서 예전의 영향력을 다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MB정부와 조선일보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왜 조선일보가 MB정부를?”이라는 의문부호가 붙긴 했지만, 이 보도로 조선일보는 친여지라는 이미지를 일정하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선진연대 보도 이후 정부 여당에 대한 조선일보의 ‘입김’은 더 강화된 듯 보입니다.

중앙의 ‘강용석 보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매체 경쟁력에서 조선일보에게 상대적으로 뒤지는 듯한 분위기를 해소하려는 의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얘기입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7·28 재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강용석 성희롱 발언’이 보도될 경우 한나라당과 MB정부 입장에선 치명적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중앙일보의 여권 내 헤게모니는 그만큼 강화됩니다. 중앙의 보도 이후 한나라당이 즉각 강 의원을 제명조치 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게 만듭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정부 여당에게 경고를 보내는 동시에 친여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카드’를 중앙이 굳이 버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강용석 성희롱 발언’ 보도는 MB정부 시절, 중앙일보가 ‘친여지’가 아니라는 근거자료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여당에 대한 경고성 차원?

종편 사업자 선정을 앞둔 시점이라는 것도 헤아려야 합니다. 중앙일보가 이번 보도로 △매체경쟁력 강화 △친여 이미지 탈피 △여권 내 헤게모니 강화라는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그리고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 지를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급한 세 가지 모두 중앙일보에게 득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될 건 없습니다. 궁극적 지향점과는 상관없이 보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중앙은 실익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중앙의 이번 보도 이면에 종편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종편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머뭇거리는 정부 여당’에게 이번 보도는 중앙일보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실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난감해지는 건 MB정부와 한나라당인 것 같네요. 이런 상황에서 재보선마저 6·2 지방선거와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깁니다. 저는 재보선 이후 조중동의 보도태도가 무척 궁금하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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