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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상 대상 수상 "길 위의 날들" 김홍종 PD
최고참 선배로 여성PD 모임 이끈 박현순 PD
광주방송 초대 노조위원장 박태명 PD
"10시 임성훈 …" 에서 ‘우리 음악’전파한 김준호 씨‘
  • 승인 1997.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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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모든 드라마는 삶의 기록이다”이태리상 대상 수상 "길 위의 날들" 김홍종 pd
|contsmark1|지난 6월 28일(토) 이태리의 라베나에서는 한국 방송사상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kbs의 좧신 tv문학관좩 ‘길 위의 날들’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이태리상의 대상 작품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작년 상해 국제 tv페스티벌에 이어 연거푸 국제대회 수상의 영광을 안은 김홍종 kbs 드라마 제작위원을 인터뷰 일정으로 바쁜 중에 만나 보았다.“흥미로 시청자를 제압하려하기 보다 작품성으로 진지하게 다가가고자 했던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까요? 긴 기다림과 짧은 만남이라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통해, 현대인이 갖고 있는 ‘존재론적 소외’라는 문제를 따뜻한 시각으로 접근했던 것이 대상 수상의 요인이 된 것 같아요.”사실 좧신 tv문학관좩은 eng물로 제작하기로 했었지만 그는 예산 부족, 주위의 우려 등을 뿌리치고 세계 시장을 겨냥, ‘고집’스럽게 film을 택했었다. 최근의 스타·인기배우 위주의 제작풍조 속에서도 그는 무명에 가까운 배우를 선택했고, 재미와 시청률, 가벼움보다 진지한 삶, 소외, 고통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는 이런 작품이 그러한 여러가지 조건의 어려움을 극복한 결과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고통의 결실이지요. 드라마 연출작업은 고행의 연속입니다. 대본 작업에서부터 촬영, 편집에 이르기까지 고통스럽고 외로운 작업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고행을 극복하는 장인정신이 있을 때 그 작품의 가치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좧밤주막좩(92년), 좧소년의 거리좩(95년)에 이어 작년 좧길 위의 날들좩로 이어지는 일련의 세 작품은 마치 3부작처럼 현대인의 존재론적 소외와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집요하게 그리고 있다.“모든 드라마는 ‘삶의 기록’입니다. 일련의 3연작을 통해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죠. 그러나 일방적인 이야기의 전달에 그치거나 드라마라는 허구에 집착하다보면 모순이 드러나고 그 장치가 보이게 되죠. 그래서 드라마의 표현양식과 언어에 대해 항상 고민을 하게 됩니다.”“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청률 위주의 방송환경과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도 삶의 진지함이나 고통을 바라보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각을 잃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신뢰가 꼭 필요하지요.”끝으로 그는 프로그램 평가에 있어 pd의 다양한 개성이 어우러진 작품성 위주의 평가가 꼭 필요하다고 얘기하며, 그러기 위해선 kbs무대, "tv문학관"의 맥을 이을 작품성 높은 단막극의 신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이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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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오늘보다 내일이, 선배보다 후배가 나아야최고참 선배로 여성pd 모임 이끈 박현순 pd
|contsmark5|“우리들이 이런 만남을 가진 것에 대해 무슨 ‘우먼파워’ 같은 걸 연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kbs 내에서만 해도 tv, 라디오 간에 pd들이 서로 교류가 없으니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요. 방송이 남녀 불문한 인기직종이 되고 보니 여성의 참여도 많아졌고 pd라는 직종에서 여자라는 성(性) 정체성에 기반한 욕구, 문제의식들도 다들 공감할 만큼 존재하고 있는 거지요. 편하게 만나서 얼굴도 익히고 선·후배, 동료 pd들간의 생각과 정보를 공유하자는 차원에서 가진 모임입니다.”각 방송사의 여성 pd들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40 여명이 다녀간 그 모임에서 그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왕고물’ 선배였다. 1973년 kbs 공채 1기로 올해 만 24년의 방송경력을 가진 그가 처음 입사했을 땐 여성 pd란 한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 자신 그해 뽑힌 20명의 pd 중 유일한 여성이었으니.“당시엔 pd라는 직종이 뭐하는 건지 잘 몰랐어요. 전화해서 pd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말그대로 ‘제작하는 사람’이라더군요. 뭘 제작하느냐 하니까 방송을 제작한다 하더라구요. 뭔가 만든다는 그 직업의 이름이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한번 해보자고 들어왔는데 24년이라는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보람있고 하루하루가 재밌었어요. 끊임없이 연구해야 되고 궁리해야 하고 참 재미나죠.”여자가 어떤 분야에서 남자와 겨루기 위해서는 남자 2, 3인 몫을 해야한다는 인식자체가 차별인 것 같다는 그는 개인적으로는 ‘인덕’이 많아서 가족이나 주변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없이 헤쳐나온 ‘다행스러운’ 경우에 속한단다. 넉넉한 웃음을 터뜨리며 입사초기의 에피소드들을 얘기하는 그를 보자니 2, 3인 몫은 충분히 해냈겠구나 생각되었다.74년 좧주부만세좩를 시작으로 좧안녕하세요 박인희입니다좩 좧자녀교육 상담실좩 좧라디오 전국연결좩 등을 제작한 ‘라디오통’인 그는 올 3월부터 국제방송국 부주간으로 구미지역 방송제작, 관리를 맡고 있다.어떤 프로그램을 만들던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안목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기본이라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다는 그가 후배 pd들에게 바라는 것.“요즘 후배 pd들은 환경도 좋은 편이고 자질도 우수해 여러 가지로 많이 갖추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고 부단한 노력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야 하고 선배가 만든 프로그램보다 후배가 만든 프로그램이 나아야 되지 않겠습니까.”또다시 그 통큰 웃음이 따라왔다.<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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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민영방송 노동조합의 새 지평을 열며광주방송 초대 노조위원장 박태명 pd
|contsmark10|“수고하셨습니다.” “덥지요. 다들 욕봤소.”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씨, 타고난 유머는 사람들을 늘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나 부드럽고 따뜻한 외형과는 달리 그의 흉중에는 시대와 역사 앞에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각오가 용솟음친다. 민영방송 최초로 노동조합을 출범시킨 광주방송 초대 노조위원장 박태명 pd다.“노동조합을 결성하자 주변의 격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등의 격려 받을 일도, 박수 받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땀흘려 일하는 노동현장에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조합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번 광주방송 노조의 출범은 당연하며 이는 시대와 역사의 요청이라고 생각합니다.”방송인으로서 노동현장에 첫발을 내딛은 지 10여년. 그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출해오면서 그는 방송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고자 부단히 애쓰고 있다.“방송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으며, 시청자가 주인입니다. 과거 우리의 선배들은 방송이 권력에 종속되지 않게 하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90년대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몇 개의 민영방송이 출범하는 등 시대상황은 달라졌으나 우리를 둘러싼 방송환경은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자칫 방송이 자본의 굴레 아래 예속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시청자가 주인이고 그 주인을 위한 방송을 만드는 것을 제1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의 사랑이 바로 방송 존립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이제 갓 출범한 광주방송 노동조합 앞에 단체협약을 비롯해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는 이러한 문제도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낙관한다.“광주방송 노동조합이 출범하기까지 경영진의 설득속에서도 수차례의 공개적 모임을 갖고 노동조합의 당위성을 재삼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열망속에 출범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사측에서도 방송문화 발전을 위해 미래지향적인 노사관계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태명 pd는 낙천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한다. 그러나 초대 노조위원장으로서 느끼는 책무때문인지 조합원동지들에게 조심스런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참된 방송인이 되겠다는 열정을 맘껏 불살라 봅시다. 조합원 동지여러분, 우리가 지금껏 해왔던만큼 열심히 일합시다. 아니 더욱더 힘차게 뛰어 신성하고 보람된 노동의 땀을 맛봅시다.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경우에 어긋나지 않는 성실한 일꾼이 됩시다.”정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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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4|“재미있는 우리 소리 프로그램 없나요?”"10시 임성훈 …" 에서 ‘우리 음악’전파한 김준호 씨‘
|contsmark15|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에 당위 차원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더구나 그 우리 것이 소위 ‘국악’이라면?그러나 민속학자 김준호 씨의 구수한 입담에 빠져들다 보면 그간 없었던 우리 음악에 대한 흥미가 생기는 물론, ‘우리 것이 과연 좋구나’ 하는 감탄도 하게 된다.민속학자 김준호 씨. 지난 6월 11일 mbc 좧생방송 10시 임성훈입니다좩에 출연해 ‘우리 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며 굽이굽이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바로 그 사람. 지난 7월 16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그는 어김없이 시청자들과 교감하며, ‘우리 소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도대체 그의 어떤 부분이 시청자들을 잡아매는 것일까. “그냥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습니다. 굳이 비결이 있다면 누구나 알 법한 친숙한 것이지만, 모르고 지내왔던 사례들을 많이 짚어주니까 시청자들이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느끼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그의 유명세는 방송에서는 오히려 늦은 편으로, 부산대 4학년 재학시절부터 ‘소리전도사’ 생활을 시작해 강사생활을 한지 10년인 중견 강사로, 일단 강연을 했다 하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반드시 재강연 요청을 받는 베테랑이다.척박한 현실에서 ‘우리 음악’을 전파한 10년동안 우여곡절은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제일 힘든 건 우리 음악에 대한 두터운 인식의 벽을 깨는 겁니다. 기껏해야 양반들이 기생 끼고 놀았던 ‘기방 음악’으로 치부하거나 - 이런 인식도 다 일제가 우리 음악을 말살시키려고 유포한 거예요 - 지금은 죽은 음악, ‘박물관 속의 음악’으로 여기지요. 이러한 인식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만연해있어요. 사실은 이러한 편견때문에 우리 음악이 죽어가고 있는 거예요.”발품 파는 고달픔,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호소할 것이라는 기자의 추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이처럼 우리 음악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니 우리 음악을 홀대하는 방송에 할 말도 많을 텐데…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다.“우리 음악 프로그램 시간이 부족한 것은 둘째치고, 그나마 있는 것도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처박혀 있으니 사실 그야말로 면피용아닙니까. 또 프로그램 형식도 천편일률적이고… 꼭 한복 입고, 머리 쪽지고 나와야 되나요? 매번 나오는 사람도 그 사람이 그사람이고 내가 봐도 재미 없더만요. 물론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pd들이 새로운 시도를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음악은 정말 무궁무진하거든요. 살아 움직이는 프로그램, 생활과 밀접한 프로그램 좀 만들었으면 좋겠네요.”문화전파의 제일선에 선 pd들에게 보내는 압력이자 청탁이겠다.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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