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TV를 명상하고 INPUT을 구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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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를 명상하고 INPUT을 구상하다
[기고] 배기형 KBS 국제협력실 PD
  • 배기형 KBS PD
  • 승인 2010.11.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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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백남준 선생의 작품 중에 ‘TV 부처’라는 게 있다. 불상 앞에 카메라가 있고 그 앞에 있는 모니터가 놓여있다. 모니터에 비추어지는 불상은 TV에 시선을 두고 명상에 잠겨 있다. 부처는 TV를 보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보는 것일까? TV 앞에서의 무심함은 무서운 관조이자 성찰이다. 부처가 명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TV가 명상을 하고 있을까?

TV에서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한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TV의 전자(electronic) 이미지가 예술의 영역으로 수용되는데 독보적인 역할을 했다. 백남준은 TV 이미지가 가지는 미학에 큰 관심을 가지며 TV 모니터를 이용한 설치 작업과 TV 네트워크를 활용한 퍼포먼스(performance)를 통해 이미지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도구로서 TV를 재해석하며 우리의 지각을 새롭게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TV 정원’, ‘TV 로댕’, ‘TV 물고기’, ‘TV 첼로’ 등 일련의 시리즈들은 TV와 관객이 가지는 긴장과 상호작용을 매개로 창조되었다. 백남준 예술의 재미는 바로 TV에 갖고 있던 우리의 관념에 대한 유쾌한 비틀음이다. 백남준에게 TV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구현하는 오브제였던 것이다.  

▲ 15인의 INPUT 창시자들(INPUT Founders). 둘째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백남준 선생. ⓒ배기형 PD

백남준이 아침에 눈뜨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커피를 마시면서 TV를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강렬한 실험정신과 자유분방한 파격으로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백남준, 그런 그가 지독한 ‘공영방송’의 옹호론자였다는 사실은 어쩌면 의아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공익에 복무하는 TV’를 옹호했고 이것은 그의 발상이며 사상이었다. 1977년 젊은 날의 백남준은 북미와 유럽의 뜻있는 방송인, 예술가들과 함께 이탈리아의 벨라지오(Bellagio)에서 모였다. 그 가운데 동양인으로는 백남준이 유일했다. 이들 15명의 INPUT 발기인들은 공영방송의 콘텐츠는 혁신적이며, 용기 있고, 도전적이어야 한다고 의기 투합하였다. 그래서 실제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자들이 한데 모여 함께 프로그램을 시사하며 치열하게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유일의 공영TV 시사회인 INPUT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이듬해 밀라노에서 첫 번째 INPUT을 개최했으며 이후 그 뜻을 받아들인 후배들에 의해서 매년 INPUT이 열리게 되었다.

사실, 이미지가 현대 사회의 언어가 된지 오래다. TV를 볼 때, 우리의 시선은 모니터라는 프레임 안에 잡혀 있지만 우리의 생각은 끊임없이 프레임 밖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TV는 유행과 대중소비를 주도하며 일방적인 권력으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가늠해왔다. 그러나 그는 매체에 대한 저항 정신을 가지고 TV의 상업화를 비판하는 예술적 해석을 덧붙였다. 이런 생각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공영방송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게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예술적 실천은 백남준 미학의 정신이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TV를 그는 꿈꾸었다. 그는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적 실천은 ‘독재’이거나 ‘독백’에 다름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 배기형 KBS PD
INPUT 정신은 바로 이러한 그의 사상이 발현이다. INPUT은 TV 모니터 안에 비춰지는 콘텐츠를 통해 우리의 아이덴티티(identity)와 현재를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창조적인 휴식과 발상의 긴장을 위해 명상과 성찰을 강권한다. 백남준 선생은 우리 TV 제작자들에게, 오늘의 시대를 자극하고 미래를 선점하는 영상의 언어를 기대하고 있을 것만 같다. 내년에는 바로 이 INPUT이 서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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