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떼어내지 못한 ‘특보’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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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떼어내지 못한 ‘특보’ 딱지
[김인규 KBS 사장 취임 1년] 끊이지 않는 ‘정권 홍보방송’ 논란
  • 김도영 기자
  • 승인 2010.11.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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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KBS 사장이 24일 취임 1년을 맞는다. 김 사장은 지난해 11월 24일 ‘정권의 낙하산 반대’를 외치며 출근을 가로막는 구성원들을 뚫고 취임식을 강행했다. KBS 사상 첫 대통령 대선특보 출신 사장인 김인규 사장은 이를 의식한 듯 취임사에서 “결단코 KBS를 장악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확실한 공영방송을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취임 1년을 맞은 김 사장은 요즘 한창 고무돼있다. KBS의 30년 숙원인 수신료 인상이 이사회 합의처리로 첫 관문을 통과했고, 한국광고주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신뢰도와 영향력 모두 1위를 차지했다. KBS는 뉴스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이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 김인규 KBS 사장이 취임 첫 날인 지난해 11월 24일 출근길을 가로막는 노조원들을 뚫고 건물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PD저널>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KBS 구성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한 PD는 “현재의 KBS가 과연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할 자격이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며 “신뢰도·영향력 평가 1위를 차지해도 일선 제작자들이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슬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 중견 기자는 외부 기고문에서 “KBS의 영향력이 두렵다”고 했다.

KBS 구성원들이 이런 자괴감을 갖는 이유는 김인규 사장 취임 후 끊이지 않는 ‘공정성 논란’ 때문이다. 윤성도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위원회 간사(PD)는 “김 사장은 특보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어 공정성·중립성을 특히 조심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취임 직후부터 정권홍보 논란이 불거졌다”고 말했다.

올 초 한나라당 출신 정치인들이 KBS 프로그램에 잇달아 출연하는가 하면, <열린음악회>는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우는 ‘UAE 원전수출’ 기념 특집을 방송했다. 지난 5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긴급토론과 성금모금 방송 등을 편성해 6·2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의 ‘북풍몰이’에 KBS가 동원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권홍보방송’ 논란은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정점을 찍었다. 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KBS의 G20 특집 프로그램은 60여편에 이르고, 편성시간은 무려 3300분에 달했다. 뉴스에서 방송된 홍보성 기사도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PD는 “공영방송이 지켜야할 선을 너무 쉽게 넘나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정권에 대한 비판은 무뎌졌다. 엄경철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눈에 띄게 편파적이지 않지만, 사회현안에 대해 침묵하고 연성화된 아이템이 늘었다”고 했다. 실제로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논란은 KBS 뉴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엄 위원장은 “공영방송의 기본책무인 의제설정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결국 관제방송, 정권홍보방송이라는 오명을 참지 못한 기자·PD들은 김인규 사장 취임 직후 새노조(전국언론노조 KBS본부)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위한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지난 7월 한 달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김인규 사장의 일방적인 경영 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 사장은 내부 반발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직종통합 등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추적60분>을 보도본부로 이관하면서 PD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최근 추진했거나 준비 중인 경인방송센터 설립과 24시간 방송도 ‘졸속 추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또 취임사에서 ‘탕평인사’를 약속했지만, 내부 구성원들은 ‘심각한 편가르기’를 우려한다. 보도본부의 한 기자는 “김인규 사장은 각종 중책은 철저히 자기사람을 앉히거나 자기를 옹립하는 데 힘썼던 인사들을 기용했다”고 지적했고, 경영직종의 한 직원은 “보복인사로 좌천된 사원들이 여전히 그대로인데 무슨 탕평인사냐”고 말했다.

하지만 김인규 사장은 이러한 안팎의 요구를 읽지 못하는 분위기다. KBS는 최근 신뢰도·영향력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을 근거로 ‘공정성 논란’은 끝났다는 입장이다. 한상덕 홍보주간은 “(김인규 사장이) 특보사장의 한계를 안고 출발했지만, 광고주협회·언론재단 조사에서 나왔듯 시청자들로부터 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안팎의 비판에 대해서도 ‘김인규호 KBS’는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 사장의 과거 정치부 기자시절 ‘독재 찬양’ 리포트를 공개한 KBS 기자협회장은 감봉 2개월의 중징계를 당했고, 특정 성향의 출연자를 배제하는 ‘블랙리스트’가 정말 존재하냐고 물었던 방송인 김미화 씨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비판에 귀 막은 소통구조에서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인규 사장은 첫 대통령 특보출신 사장으로 나쁜 선례를 남겼다. KBS로서는 아픈 경험이고, 분명 후퇴다. 특보라는 핸디캡을 스스로 떼어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지난 1년은 절반의 실패다” (엄경철 KBS본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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