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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성’ 정권홍보 프로그램 비일비재”… 비판 저널리즘은 ‘위축’

지난 5월 〈KBS 스페셜〉 소속 PD 15명은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최근 두 달간 13편의 (경영진이 지시한) ‘오더성’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프로그램을 정권의 도구나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폭로했다.

천안함 사건 직후 ‘북풍몰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특집 프로그램에 동원됐던 PD들이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언젠가부터 KBS 내부에선 ‘제작자율성 침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지만 구체적인 사례가 수면위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었다.

김인규 사장 취임 후 정권 홍보성 프로그램이 늘면서 경영진의 ‘지시’에 의해 편성되는 프로그램이 늘었다. 한 PD는 “최근 G20 특집 프로그램 등 대부분 PD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끌려가다시피 제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KBS가 공영방송인지 KTV인지 자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지난 6월 조직개편 이후 <추적60분>의 한 PD가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보도본부 이관을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KBS PD협회
반면 비판적인 시사 프로그램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전임 이병순 사장 때 〈시나투나잇〉 등이 폐지됐지만 김인규 사장 취임 후에도 이를 대체할 프로그램은 신설되지 않았다. 시사 프로그램의 명맥을 이어오던 〈추적60분〉은 지난 6월 조직개편 때 ‘기자·PD협업’ 강화를 이유로 보도본부로 이관되면서 갈등을 빚었다.

당시 PD들은 “게이트키핑 강화란 명목으로 PD저널리즘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했고, 실제로 〈추적60분〉은 ‘조현오 경찰청장 동영상 누락사건’ 등을 겪었다. 한 PD는 “김인규 사장이 추진한 기자·PD협업은 PD들을 믿을 수 없으니 게이트키핑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강제적 협업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기자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엄경철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은 “이병순·김인규 사장을 거치면서 저널리즘의 기준이 정치논리로 바뀐 것 같다”며 “대통령이나 여권에 민감한 아이템을 내면 (데스크는) 왜 반정부적인 것만 하냐고 질책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건 네 생각’이란 식으로 대응하는데, 잘못된 관행이 자리 잡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단체협약 체결이 마무리되는 대로 ‘제작자율성 침해’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엄경철 위원장은 “첫번째 공방위가 열리면 최근 진통 끝에 방송된 〈추적60분〉 천안함 편에서 사측이 일부 장면의 삭제를 요구한 이유는 뭔지 추궁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 위원장은 또 KBS 기자·PD협회와 함께 회원 전수조사를 실시해 제작자율성에 대한 실태를 명확히 파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추상적인 공정성·신뢰도 조사가 아닌, 편성규약에 명시된 제작자율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5점 척도로 묻는 등 회사의 선입견에 따라 일선 제작진의 자율성이 얼마나 침해되고 있는지 조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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