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 교감네의 바람 잘날 없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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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주말연속극 ‘사랑을 믿어요’

<솔약국집 아들들>을 연출한 이재상PD와 조정선 작가가 다시 뭉쳤다. KBS 2TV 주말연속극 <사랑을 믿어요>는 50부작으로 앞으로 1년 가까이 진행되는 드라마다. 방영 시작 이래 20% 이상(AGB닐슨)의 시청률을 보이며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사랑을 믿어요>는 교직자 집안인 김 교감 부부(송재호-선우용녀)의 한 지붕 이야기다. 전작 <솔약국집 아들들>은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아들 4명의 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만 <사랑은 믿어요>는 여성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고, 대가족 내 수동적인 여성이 아닌 진취적인 중심 인물로 입체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 KBS 주말드라마 ‘사랑을 믿어요’ 포스터

<사랑을 믿어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김 교감의 어머니(나문희), 첫째 며느리(선우용녀), 둘째 며느리(윤미라), 손자며느리(박주미), 손녀(문정희, 한채아), 그리고 수양손녀(황우슬혜)다.

대가족 내 서열 1위인 김 교감의 어머니 차귀남(나문희)은 연장자로서 가족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다만 남자에게 휘둘리는 손녀(한채아)에게 눈높이 연애상담으로 일침을 가한다. 무조건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도, 자식으로부터 보상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녀는 늘 신문을 읽거나 책을 가까이하며 노년의 삶을 꾸려나간다.

김동훈(이재룡)의 아내 서혜진(박주미)은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역할을 넘어서 ‘서혜진’이라는 본인을 지키고자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홀로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중학교 때 졸지에 고아가 된 서윤희(황우슬혜)는 당시 담임선생님이었던 김 교감네 수양딸이다. 윤희는 따뜻한 가족들의 사랑으로 외로움에 고립되지 않고, 교사로서 어린 시절의 본인을 어루만지듯 제자들에게 마음을 쏟는다.

아들 셋을 키우며 목소리만 커진 김 교감의 큰딸 김영희(문정희)는 남편(권해효)에게 늘 무시당한다.  각개전투로 작은 아버지(박인환)의 보조 작가 일을 몰래 이어나가며 그녀의 인생을 찾으려고 애를 쓰지만 남편의 반대가 심해 여의치가 않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기에 김 교감의 아내 이미경(선우용녀)은 갈등을 풀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한다.

소위 가족 드라마에서 여성적이지 않은 여성은 철부지로, 진취적인 여성은 워커홀릭으로 그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춘기로 치부하거나 인물의 일부는 극단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사랑을 믿어요>의 여성들은 인물의 고유한 ‘성격’으로 드라마 흐름을 탄다.

이제 극이 전개되면서 각 인물들은 갈등과 맞닥뜨린다. 그들은 사랑을 넘어 ‘믿음’이 무엇인지 묻는다. 늘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믿지 못하는’ 큰 딸네 부부(권해효-문정희)와 인생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 필요에 따른 ‘허울뿐인 믿음’을 가진 동생네(박인환-윤미라)가 등장한다. 반면 김 교감네(송재호-선우용녀)는 40년을 이어온 ‘묵은 믿음’을, 큰 아들네(이재룡-박주미)는 남편의 아내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네 삶에 얽힌 다양한 ‘믿음’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 KBS ‘사랑을 믿어요’에서 부부로 만난 이재룡과 박주미. ⓒKBS

서혜진(박주미)가 유학시절 스친 인연 한동우(이상우)의 등장으로 3년 유학길을 밀어준 남편 김동훈(이재룡)의 절대적 믿음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유부녀와 미혼남의 애정 전선을 형성해 결국 막장 드라마의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과연 기우에 불과할지 두고 볼 일이다.

<사랑을 믿어요>는 기존 가족 드라마와 달리 인물의 성격과 역할을 에피소드를 통해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엄마’라는 전형적인 여성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서혜진(박주미)은 어린 딸을 두고 떠난 이기적인 엄마로 여겨져 시댁에서 겉도는 모습이나 윤화영(윤미라)도 배우로 성공하는 동안 자식을 보모에게 맡긴 탓에 아들로부터 톡톡히 외면당하고 있다.

전형적인 여성상의 한계의 돌파구는 설득력에 있다. <사랑을 믿어요>에서 자신을 지키는데 누구보다 간절한 서혜진의 선택과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반기를 든 김영희(문정희)의 행보, 그리고 마음의 그늘에만 머무르지 않는 김윤희(황우슬혜)의 모습이 기대된다. 또한 윤화영(윤미라)과 아들 김우진(이필모)의 애증을 풀어가는 과정 또한 지켜볼 일이다. 시청자가 인물들의 선택과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때, 인물에 대한 ‘공감의 교집합’은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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