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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6일 저녁 <KBS스페셜> ‘아버지의 집’편에선 경북 봉화의 한 시골마을에서 300년 넘은 조선시대 가옥 ‘송석헌(松石軒)’을 고집스레 홀로 지키며 사는 노인의 이야기가 수묵화처럼 그려졌다.
 “하나의 집은 시작되고 지어지고 마무리되고 쓰여지고 사랑받고 지속되고 사라지며 마침내 추억을 남긴다”란 건축가 김기석의 글로 시작한 이 작품은 절제된 시선 속에 사라져 가는 것이 지닌 가치를 조명했다. 유동종 PD는 프롤로그처럼 ‘아버지의 집’을 추억으로 남기며 방송 3일 전 정년퇴직했다.

1981년 KBS에 입사한 그는 <한국의 미>(1990)를 시작으로 <팔만대장경>(1997), <트라피스트 수도원>(2000), <간이역>(200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인간에 대한 옹호>(2005) 등 전통문화와 종교의 영역을 넘나들며 PD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역사적 문제의식에도 천착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일본 여성을 다룬 <가네코 후미코>(2006)와 ‘광주’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던진 <오월의 두 초상>(2006) 등 팩션 드라마를 제작, 또 다른 실험정신을 펼치기도 했다.

PD 생활을 하면서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체의 간부직을 사양한 채 연출 외길을 걸어왔다. 30년 동안 맡은 보직이라곤 ‘다큐멘터리 전문PD'가 전부였다. 시청자의 눈을 흐트러뜨리는 설명과 자료를 최대한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을 특징으로 했던 그의 작품 그대로의 삶이었다. 현재 그는 몽골 방송사에서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명. 일반인에게는 MBC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잘 알려진 이근행 PD. “저는 지금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독립, 그리고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난 2년간 부단히 싸운 결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MBC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된 그가 법정 최후진술에서 밝힌 말이다. 노조위원장으로서의 2년은 미디어법 강행 처리와 <PD수첩> 탄압, 낙하산 사장 임명, 그리고 해직과 벌금형 등 모진 시련의 연속이었다.

1991년 입사한 그는 청와대와 검찰 등 한국의 4대 권부를 해부한 <PD수첩>(2003)과 일본 군국주의의 본질을 정면으로 겨눈 <천황의 나라 일본>(2005)을 통해 강단을 보였는가 하면 <휴먼다큐 사랑>(2008)에선 애잔하면서도 따뜻한 터치로 감성이 돋보이는 연출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달 노조위원장에서 물러난 그에겐 ‘당분간’ 돌아갈 프로그램이 없다.

한국PD연합회는 제23회 한국PD대상 공로상 수상자로 유동종, 이근행을 선정했다. 오로지 작품 활동으로 일관한 PD로서의 장인정신과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움켜쥐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두 사람의 얼굴은 2800여 PD연합회원 모두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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