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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되고 싶어요"
  • 승인 1997.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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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장인수<불교청주방송>
|contsmark1|h.o.t, 젝스키스, 벅, 소호대 등등 국적불명의 이름들이 이제는 일상화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보면 기성세대 중에는 h.o.t를 ‘핫’으로 벅을 ‘박’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어른들이 많다. 어찌 보면 이것이 당연한 일일 텐데, 소위 요즘 유행하는 연예인 이름 정도를 꿰어차고 있지 않으면 구식으로 몰리거나 답답한 사람으로 대접받기 십상이다.아직 이립(而立)의 나이가 조금 덜 됐고 직업이 pd인 만큼 요즘 신세대의 트렌드만큼은 따라간다고 자부했지만 방송사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나는 이제 신세대이기를 포기하기로 했다.자기가 중3의 여학생이라고 신분을 밝힌 그녀는 다짜고짜 빽깔이(백댄서의 은어)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자기의 마음을 부모는 몰라주고, 방송사의 쇼 프로그램에서는 백댄서를 쉽게 볼 수 있으니까 방송사에 전화를 해보면 백댄서가 되는 방법을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방송사에서는 백댄서를 모집하지도 않고 더욱이 우리 방송사는 지방의 조그만 방송사라 정 관심이 있다면 서울의 큰 방송사로 연락을 해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나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장난이려니 하고 건성건성 토요일 학교가 끝난 후 방송사로 찾아오라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말 일을 끝내고 퇴근할 무렵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순간 긴장을 했고(?) 알고 보니 지난 번 전화한 여학생이란다. 오디션 준비를 다 해왔으니 한번 자기의 백댄싱 실력을 봐달라는 얘기였다. 연예인이란 그리 화려한 직업도 아니고, 백댄서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을 해도 그녀의 용기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조그만 스튜디오 안에서 어색한 오디션이 끝난 후 그녀는 나에게 조그만 패션명함을 내밀었다. 언제든지 연락하면 나올 수 있고 나중에 자기가 음반을 내게 되면 잘 키워달라는 거래까지 제의하면서….공개방송에서 만나게 되는 소위 백댄서들은 무대 위에서의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대기실에서 만날 때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줄담배를 피워대며 멍하니 바라보는 그들의 초점 흐린 눈동자 속엔 이미 삶의 고통과 허무함이 투영된 듯 하다. 10대들에게 느낄 수 있는 생기와 발랄함보다는 그들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본다면 과장일까. tv나 라디오에 비춰진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꿈꾸어왔던 세계가 그러한 것들은 아니었을 것이다.전부는 아니지만 불을 향해 돌진하다 끝내 생을 마치는 부나방같은 그네들의 생활을 내게 전화한 그녀는 알고 있을까? 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보다 자극적인 의상과 분장, 보다 화려한 조명으로 포장된 가공의 세계를 연예인과 백댄서의 실제 모습이라고 청소년들은 생각하고 있다. 판단기준이 명확히 서지 않은 미성년자들에게 시청률(청취율)과 방송수익성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포장과 위장, 변장의 모습을 제공해 왔는가 반성해 본다. 우리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보내는 방송의 모습이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하니 새삼 어깨가 무거워진다.그러나 오랜만에 하게 되는 공개방송을 마치고 장비를 추스를 무렵 내 뒤로 누가 다가와 늘 똑같은 질문을 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아저씨, 저… 연예인이 되고 싶은데요.”|contsma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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