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의무재송신’ 밀어붙이기 공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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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방안 공청회’ 논란

지상파 콘텐츠 이용에 대한 대가 지불 문제를 놓고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등 유료방송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이하 방통위)가 과연 공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재송신 제도 개선 전담반을 통해 의무재송신 채널(현행 KBS1과 EBS)에 KBS2를 포함시키는 A안과 한시적으로 전체 지상파 채널을 의무재송신 채널로 정하는 B안을 내놓더니 지난 29일엔 공청회까지 열어 ‘지상파 채널=의무재송신 채널’ 등식을 공고히 하는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실제로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지상파 방송 재송신 제도 개선 방안 공청회’에선 현행 의무재송신 채널에 KBS2를 더하거나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전환 이전(2012년)까지 지상파 채널 전체를 의무재송신 채널로 확대하는 안에 대한 논의만 이어졌다.

지난해 9월 법원이 케이블 방송의 지상파 채널 재송신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이미 논외였다.

김정원 방통위 뉴미디어정책과장은 재송신을 놓고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 법정 다툼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며 “당장 입장을 정하기 쉽지 않다”고 곤혹스러움을 표시하면서도 “적어도 시청자가 방송을 못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재송신 제도 정비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주제발표를 맡은 노기영 한림대 교수(언론정보학)도 최근 불거진 MBC·SBS와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의 재송신 분쟁을 앞세우며 지상파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시청 접근권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발제에 앞서 스카이라이프 가입자임을 밝히며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봐야 하는데 (SBS의 재전송 중단으로) HD로 경기를 볼 수 없게 됐다. 스카이라이프가 원망스럽고 시청권을 볼모로 분쟁을 하는 SBS는 치사하다”고 비판했다.

노 교수는 “보편적 시청권 보호를 위해 의무재송신 범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무재송신 채널에 KBS2를 포함하는 안에 대해선 “의무재송신 대상이 아닌 MBC, 지역민방 등에선 재송신 분쟁이 계속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시적으로 지상파 채널 전체를 의무재송신 하는 안과 관련해선 “KBS2만 확대하는 안보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시청권을 보다 강력하게 보호하는 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안에 따라 새롭게 의무재송신 되는 채널에 대해선 저작권을 인정해야 하며, (의무재송신 범위를) 민영방송에까지 확대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란인 만큼, 이 안은 일시적이고 응급적인 성격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 ‘일몰제’ 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29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지상파방송 재송신 제도 개선 방안 공청회’에서 노기영 한림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PD저널
그러나 케이블·위성방송 추천 패널인 이재경 건국대 교수(법학)는 “전체 지상파 채널을 의무재송신하면서 (KBS2와 MBC, 지역민방 등에) 저작권도 인정, 대가를 지불하라는 건 강제징수와 동일하다”며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학회 추천의 황승흠 국민대 교수(법학)도 “B안을 지지한다”고 밝힌 뒤 “재허가 행위에서 공·민영을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의무재송신에서도 이를 구분할 필요가 없고, 일몰제 또한 공영방송의 의미를 볼 때 필요할 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방송학회 추천의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사무총장은 “(지상파 콘텐츠는) 정부의 상당한 혜택, 사업권 보장 등에서 비롯한 것인 만큼 지상파만의 창조적 저작물로 보긴 어렵다”며 의무재송신 채널 확대와 함께 재송신 중단 사태에 대한 방통위 적극 개입을 강조했다.

케이블·위성방송 추천의 장선 변호사(법부법인 광장)는 “모두 손쉽게 지상파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니 케이블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게 아닌가. 이로 인해 유료방송이 돈을 좀 버니 지상파가 그 돈을 나누자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저작권을 말하고 싶다면) 지상파도 전파를 반납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납품하면 될 일이다. 공중에 무료로 보라고 하면서 케이블엔 돈을 받겠다는 건 맞지 않다. 지상파는 PP(채널사용사업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에서 인정한 지상파 콘텐츠의 저작권은 이날 공청회에선 이미 ‘불인정’의 대상이 된 것이다. 심지어 일부 패널에게선 “지난해 법원의 판결은 잘못된 것”이란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상파 측 패널의 목소리는 힘을 받지 못했다. 고민수 강릉원주대 교수(법학)는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재송신 분쟁 속 시청자가 유료방송과 계약했던 내용대로의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유료방송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유료방송 사업자가 하자있는 물건을 납품한 것으로, 이때 상품공급을 제대로 못한 쪽에서 책임을 져야지 원료공급을 안 한 자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상파 채널=의무재송신 채널’ 등식을 밀어붙이려는 시도보다는 케이블·위성방송이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지상파 방송 측과 원만한 협상을 하는 게 우선이란 것이다.

고 교수는 MBC·SBS와 스카이라이프의 재송신 분쟁 등과 같은 특정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법·제도를 변화시키려는 방통위의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지금 사건 하나를 해결하기 위한 법 제정 논의는 ‘처분적 법률’로 이는 일반적으로 위헌”이라며 “법률은 공통의 사안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케이블을 통해 지상파 방송이 재송신 되지 않으면 위성방송, IPTV 등 다른 대안적 플랫폼이 있지 않나. 서로 경쟁하라고 만들어놓고 케이블을 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혹은 위성방송을 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방통위가 움직이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고 교수 외에도 지상파 측 추천 패널 2인이 더 있었지만 케이블·위성방송 측 패널 3인과 한국방송학회 측 패널 4인이 사실상 ‘지상파 채널=의무재송신 채널’ 주장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이들의 주장은 ‘소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날 공청회를 참관한 지상파 관계자들 사이에선 “패널 구성 자체가 3대 3이 아닌 이미 (케이블·위성 방송 측으로) 추가 기울어진 불공정한 공청회”(KBS 기획부 관계자)란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날 공청회에서 지상파 채널의 의무재송신 채널 지정을 주장하는 유료방송 측의 요구에 방통위 관계자는 “사법·행정이 따로 가지 않는다”며 현재도 진행 중인 지상파와 유료방송 측의 법정 다툼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사법·행정이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면 지상파의 저작권을 인정했던 지난해 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발언이 공공연히 나오고 유료방송 측 목소리만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이날 공청회는 시기상·형식상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언론법 관련 판결 이전 방통위가 언론법에 근거를 둔 종합편성채널 선정을 위한 법적 절차를 미리부터 밟아 물의를 빚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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