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성’ 없는 공영방송의 시대…‘암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학 부재 낙하산 사장…시청률·정권 눈치보기 급급

바야흐로 ‘공영성’ 없는 공영방송의 시대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게 당연한 것처럼 공영방송에서도 ‘공영성’을 외면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개편 때마다 공영방송들은 앞 다퉈 “공영성 강화를 위해” 라는 수식어를 앞세워 개편의 당위성을 강조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존재하는 건 ‘시청률’ 논리뿐이다.

게다가 현 정권 출범 이후 하나 둘 안착한 친(親)정부 성향의 낙하산 사장들은 ‘시청률’ 논리를 앞세워 정권의 ‘눈엣가시’인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배짱까지 부리고 있다. 하지만 이 때 등장하는 시청률 논리는 근거마저 빈약해 또 다른 갈등을 낳는 요소로만 기능한다. 공영성에 대한 철학이 빈곤한 낙하산 사장이 안착한 공영방송의 현주소인 것이다.

■‘공영성’ 대신 ‘시청률’로 무장=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는 방송은 존재하기 어렵다. 이는 공영방송도 마찬가지다. 반면 시청률 논리만 횡행해서도 안 되는 게 방송이다. 대중에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래선 안 되는 게 방송의 기본 속성인 탓이다. 공영방송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최근 진행된 공영방송의 개편 내용을 보면 시청률 논리만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30일 봄 개편을 단행한 KBS는 중요 시간대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서바이벌과 오디션 관련 프로그램을 대거 배치했다.

먼저 토요일 저녁 2TV는 <백점만점>과 <명 받았습니다>를 폐지하고 그 자리에 <자유선언 토요일> ‘불후의 명곡 2’(오후 5시 50분)를 편성했다. ‘불후의 명곡 2’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서바이벌 포맷의 MBC 주말 예능 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와 유사한 포맷을 취하고 있다. 또 토요일 밤 2TV는 <밴드 서바이벌 TOP밴드>(이하 <TOP밴드>, 밤 10시 10분)를 편성했다. 금요일 밤 2TV 역시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이하 <도전자>, 밤 11시 5분)를 편성하고 있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MBC 사옥 ⓒMBC

서바이벌과 오디션 관련 프로그램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방송의 트렌드인 게 사실이다. 더구나 종합편성채널 등의 출범이 예정돼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공영방송 또한 유료방송들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측면도 있다. 실제로 조대현 부사장은 “방송환경이 급변할 것”(5월 24일 개편 설명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서바이벌과 오디션 관련 프로그램이 이미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마저도 새로운 포맷에 대한 시도는 외면한 채 트렌드만을 쫓는다면 방송 전체가 식상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폐지가 결정된 <백점만점>과 MBC <꽃다발>(일요일 오전 9시 25분)은 지난 개편 당시 우후죽순 생겨났던 아이돌 중심의 포맷이었다. 과거 KBS가 ‘공익적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 끝에 <상상플러스> 등의 프로그램을 탄생시켜, 시청률 잡기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언론·시민단체로부터도 호평을 얻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인 것이다.

더구나 이들 서바이벌·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지난 1월 신년 개편 당시 KBS가 공영성 강화를 내세우며 편성한 프로그램들을 밀어낸 자리에 배치됐다. 1월 개편 당시 KBS는 2TV 핵심 시간대 공영성 강화를 말하며 열린 다큐 <금요기획>(금요일 밤 11시), <명작스캔들>(토요일 밤 10시) 등을 편성한 바 있다.

■제작자율성 없인 창의적 프로그램 ‘불가’= MBC의 상황은 KBS보다 더하다. 지난해 9월 국제 시사프로그램인 <김혜수의 W>를 폐지하고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을 편성했던 MBC는 지난 5월 27일 종영된 <위탄> 시즌1의 자리에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를 편성했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BBC <스트릭틀리 컴 댄싱>(Strictly Come Dancing)의 포맷을 그대로 차용한 프로그램이다. 일요일 오전에는 아이돌 포맷의 <꽃다발>을 폐지한 자리에 게임쇼 <사소한 도전 60초>(오전 9시 25분)를 편성했는데, 이 또한 미국 NBC <미닛 투 윈 잇>(Minute To Win It)의 포맷을 차용한 프로그램이다. 검증된 포맷으로 시청률을 담보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MBC는 공영성 강화를 앞세우며 <당신이 국가대표입니다>와 같이 정부에서 돈을 대고 정부 관계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해 MBC 안팎으로부터 “정부 홍보 가능성”의 우려부터 “공영과 관영을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MBC는 프로그램 개편 뿐 아니라 진행자와 출연자를 교체에도 시청률(청취율) 논리를 내세우며 정권이 ‘눈엣가시’처럼 여긴 이들을 솎아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5월 30일 MBC 라디오본부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매일 뉴스브리핑을 담당하던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를 하차시켰다.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은 김씨 하차 직후 <PD저널>과의 통화에서 “(김씨가 진행하는) 1,2부 시간대 청취율이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MBC는 지난 3월 프로그램 경쟁력을 앞세우며 MBC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인 김미화씨를 자진하차 형식으로 사실상 경질했는데, 김미화씨 하차 이후 이 프로그램의 청취율은 30% 급감한 상황이다.

또 MBC는 지난 3월 ‘시청률 경쟁력’을 강조하며 최승호 PD를 비롯한 <PD수첩> 제작진을 대거 교체했다. 하지만 <PD저널>이 시청률 전문조사기관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와 TNmS에 2010년 1월 5일부터 2011년 5월 17일까지 <PD수첩> 시청률을 의뢰해 분석한 결과 이 기간 동안 시청률 상위를 기록한 아이템은 정치·사회 권력을 비판·감시한 내용들로 대부분 교체된 제작진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었다.(<PD저널> 706호 참조)

시청률(청취율) 논리를 앞세운 MBC 경영진의 일련의 조치들은 결국 프로그램 경쟁력 강화 대신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만 낳고 있는 상황이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제작 자율성이 침해된 상황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겠냐”며 “공영성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낙하산 사장에 의해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과정 속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