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없는 방통위의 지상파 재송신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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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없는 방통위의 지상파 재송신 정책
[특별기고] 윤성옥 한국방송협회 정책실 연구위원
  • 윤성옥 한국방송협회 정책실 연구위원
  • 승인 2011.08.1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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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인호

디지털시대 정보격차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국내 가구 지출 중 적잖은 통신비 비중을 감안한다면 디지털시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의 간극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의무재송신 제도는 시청자 접근권과 관련이 있고 방송사업자의 수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방송정책 중 하나다.

디지털시대 의무재송신 규제가 여전히 필요한지부터 의무재송신 채널을 공영방송으로 할 것인지 모든 지상파채널로 확대할 것인지 논란이 많다. 또 방송법상 의무재송신 대상이 아날로그 채널만 재송신하라는 것인지, 디지털채널까지 재송신하라는 것인지, 아날로그-디지털 채널을 다 의무재송신해야 하는지 개념도 불명확하다. 채널의 부가서비스인 데이터방송이나 다채널서비스까지 의무재송신 대상인지도 현재로서는 모호한 상태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지상파방송 의무재송신 제도개선안을 내놓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 ⓒ설인호
방통위 제도개선안

방송통신위원회 최종안에 따르면 제1안은 모든 지상파방송까지 의무재송신 범위를 전면 확대(KBS 1TV/EBS 제외하고 대가지급 산정)하는 것이고, 제2안은 KBS 광고폐지 시점까지 현행 제도 유지(KBS 2TV 광고폐지 시 무상 의무재송신 적용)를 제시하고 있다.

2008년 지상파방송과 케이블방송간 갈등이 시작되었고 2009년 지상파방송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그동안 법원 판결문만 4개(가처분 2심, 민사 2심)가 나왔다. 분쟁을 겪은 지 3년 이상이 흘렀고 법원이 일관되게 지상파방송의 손을 들어줬으니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억울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방송사업자의 억울함은 차치하자. 어디까지나 방송정책은 방송이라는 특수성에 기반하고 시청자 복지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는 의무재송신 확대 정책을 외형상으로만 보면, 모든 지상파채널을 의무재송신 대상으로 포함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접근권을 확보해주고, 케이블방송사업자에게는 지상파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제공해주고, 지상파방송에게는 대가지급을 보전해주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보인다. 그러나 방통위안이 모두를 만족시키고자 했을지는 몰라도 모두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이고 디지털시대 의무재송신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보다는 봉합 수준의 졸속 정책이란 평가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의무재송신 규제는 어디까지나 케이블방송과 같은 유료플랫폼사업자에 대한 규제이다. 유료플랫폼사업자가 원하지 않는 채널을 국가가 강제로 의무적으로 재송신하라면서 재송신대가까지 지불하라는 정책을 제도개선안으로 내놓았다. 규제 원리에도 맞지 않고 언제든 위헌소지가 있다.

또한 의무재송신 제도는 지상파방송이 시장에서 선택되지 않고 탈락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접근권을 보장하고자 유료플랫폼사업자에게 의무적으로 재송신하라는 규제이다. 시장에서 너도 나도 재송신하기를 원하는 킬러 콘텐츠를 의무재송신 채널로 규정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지상파방송의 협상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SO 특혜 정책일 뿐이다.

직접수신환경으로 시청자의 접근권, 선택권을 당연히 보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편법적으로 케이블방송과 같은 유료방송을 통해서 지상파채널의 접근권을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시청자 복지와는 역행한다.

유료플랫폼의 의무재송신 정책의 원칙

공영방송이 수신료로 운영되는 것과 유료방송사업자가 남의 콘텐츠 가지고 영리적으로 이용하는 행위가 무슨 관련성이 있다고 재송신 정책에서 KBS의 광고폐지나 수신료 인상 문제를 무상 재송신과 연결 짓는지도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방송법상 의무재송신 채널인 KBS1, EBS를 동시중계방송권의 예외로 한 것은 수신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영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개념이 아니다. 일정한 채널을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의무재송신 하도록 국가가 강제했기 때문에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저작권(정확히 말하자면 저작인접권) 처리로부터는 자유롭게 해준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상파 재송신정책은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상파 재송신정책에 있어서는 시청자 접근권과 선택권 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마치 지상파방송의 직접수신환경이 불가능하거나 대단히 비효율적인 것처럼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의무재송신 정책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지상파방송을 직접 수신할 수도 없는데 무료로 고화질, 고품질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며 지금 국민들한테 디지털전환 하자고 설득하고 있는가. 지상파방송의 직접수신환경은 정책적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또한 의무재송신 제도는 지상파방송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국내 방송시장에서 지상파방송이 경쟁력이 있고 우월적 지위에 있다면 의무재송신 제도는 도입할 필요가 없다. 지상파방송이 특정 유료플랫폼에 채널 제공을 거부할까 걱정이 된다면 지상파방송에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는 별도의 규제를 적용할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지상파방송들이 채널 제공을 전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채널을 이용해도 좋은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주장이니 해당사항 없음이다.

마지막으로 방송 콘텐츠 보호 원칙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케이블-지상파 재송신 분쟁에서 법원이 지속적으로 동일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유료플랫폼사업자들이 영리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파채널을 고가의 디지털상품에 엮어 판매하고 월 가입료를 받고 있으니 콘텐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막대한 신규 제작비를 투자한 지상파방송사업자가 콘텐츠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계속 프로그램에 투자할 유인책이 있을까. 이 단순한 논리를 수용하기가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그런 측면에서 과연 법원보다 방통위가 규제기관으로서 전문성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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