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신앙 쟁탈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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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류사에서 자행되어 온 식민지 정복의 원인과 과정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하나의 키워드를 고른다면 ‘신앙쟁탈’이라는 표현을 선택하고 싶다. 침략의 수단은 군대와 무기였고 동기는 탐욕이었지만 그 침략의 시작과 끝을 있게 한 것은 늘 종교였다.

“신께서 원하신다!” 는 믿음 하나로 십자군 원정과 신대륙 침략이 시작되었고 영국을 필두로 한 서구 열강들의 근대 식민지 개척도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축복과 지원 속에서 진행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 걸쳐 존재하는 이슬람 국가들도 실은 오래 전에 그곳에 무슬림들의 침략이 있었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세워진 여러 종교들의 다양한 사원들은 모두 피지배 민족들이 믿어 오던 토착종교의 성지를 허물고 침략자들이 세운 신앙 쟁탈의 유적들이다.

신앙 쟁탈 전쟁이 성공하면 피지배 민족은 지배 국가에 동화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밟는다. 이런 동화의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피지배 민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배 민족보다 더 병적으로 새로운 종교와 문화에 집착하는 편집증을 보인다. 이것은 식민지 출신이 가지는 자격지심과 수치심을 은폐하기 위한 내면적인 보상 심리의 작동 결과일 것이다.

한반도라는 역사 공간도 예외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제는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우리나라의 산하 곳곳에 일본식 신사를 건립한다. 다행히 일본 강점 기간이 길지 않아 민족의 종교와 전통이 말살되지 않고 살아남는다. 해방 후 남한정부는 1949년 개천절을 국경일로 지정하면서 단군의 역사를 이어가게 된다.

단군을 신화로 볼 것인지 역사로 볼 것인지 혹은 종교로 볼 것인지 많은 논쟁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제가 단군에 대한 한민족의 원형질적인 기억들을 우리 민족 고유의 그 무엇으로 보고 끊임없이 격하하고 지우려했다는 사실이다. 태생이 외래인 불교나 유교보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더 잘 나타내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단군의 역사는 다시 위기를 맡는다. 해방 이후 남한에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패권이 기독교와 함께 등장한 것이다. 순식간에 한국은 개신교의 본산인 미국보다 더 열광적이고 극성스러운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로 변신한다. 식민지 출신의 자격지심이 여기서도 발동 된 것일까? 불과 몇 십 년 만에 한 국가의 주류 종교가 강압도 없이 이렇게 급격하게 바뀌는 예가 세계사에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극히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 김욱한 포항MBC 편성제작팀장

 

어쨌든 단군은 다시 미신 혹은 타파되어야 할 구습의 유물로 전락하고 만다. 명색만 개천절이라는 국경일로 남아 일 년에 한번 국민들에게 휴일을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로 기억되는 단군 할아버지의 처지가 새삼 측은하고 안타깝다. 그래도 가을 하늘 빛은 맑고도 깊다. 5천 년 전 하늘을 열었던 그 날도 오늘처럼 푸른 날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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