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D의 눈〉 고정 칼럼니스트로 암약한지 만 6년이 지났다. 가끔 여러 가지 경로로 방송 현업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오는 독자들이 있다. 그 중 단연코 PD 지망생의 문의가 많았다. 압도적 빈도수의 질문은 “쇼 프로그램 제작에서 좋은 기획이란 무엇인가?”다. 15년차의 적지도 풍부하지도 않은 애매한 경력의 PD이지만, 쇼PD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현장에서 체득한 나름대로의 해법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쇼 제작에서 기획력만큼 중요하고 때때로 더 요구되는 능력이 실행력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기획력의 출발이라면, 실행력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로 나누어 생각하면 쉽다. 창의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작업이 기획이라면, 독창적 상상을 현실에 구현하는 능력이 실행의 영역이다.

그런데 실행력을 능가하는 기획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연출자의 실행력을 뛰어넘는 기획은 기획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순수한 아이디어로 그칠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쇼 제작은 아티스트의 창의적 영역인 동시에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공학(工學)적 성격이 강하다. 쇼PD는 흔히 아티스트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오해 받고 일부 그런 경향도 실재하지만, 반드시 뛰어난 공학자가 되어야 한다.

쇼PD는 건축물의 설계자와 공사 현장 감독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해야 한다. 이제까지 없었던 독창적 미학을 뽐내기 위한 건축물 설계는 아티스트적 감수성도 필요하지만, 토목공학과 건축공학 전문 지식도 필수조건이다. 설계 과정에 실제 건축 돌입 시 각 공정에서 필요한 장비와 인력에 대한 경영적 한계와 공학적 특성이 누락된다면, 그것을 설계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그 설계대로 건축이 가능하기나 할까?

에너지 넘치는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불가능한 상상을 구현할 공학적 논리 역시 필요하다. 쇼PD 자신 혹은 그 제작진이 현재 소화하기 어려운 상상력을 참신하다는 이유만으로, 구체적 대안 없이 강행한다면 결과는 비참할 것이다. 어쩌면 의미 있는 상상력이란 자신의 수행능력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일지 모른다.

쇼PD를 꿈꾸는 준비생과 현재 방송사에 입사해 쇼PD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후배들에게 이 점을 부탁드리고 싶다. 준비생에게는 엑셀과 파워포인트 원 노트 등 각종 문서 프로그램의 달인이 될 것을 추천한다. 설계도면(큐시트)을 직접 그리는 건축가와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남에게 부탁하는 건축가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 공태희 OBS‘WAVE KPOP’PD

 

그리고 방송사의 후배들에게는 우선 세트 모눈 평면도면과 조명 및 음향의 회로도면 만을 보고 충분히 이해 가능할 정도로 방송 공학에 매진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PD가 세트 디자이너, 명 음향감독을 능가하는 전문가는 될 수 없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만 목표로 삼는 것도 좋다. 궁극적 쇼PD는 천재라기보다는 장인(匠人)이나 달인(達人)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거칠고 성기기는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쇼(또는 쇼 프로그램의 큐시트)의 정의(定義)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필요한 사람과 장비를 있게 만드는 것.”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