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언론의 암흑지대’ 월가에만 있나
상태바
[논설] ‘언론의 암흑지대’ 월가에만 있나
  • PD저널
  • 승인 2011.10.12 14: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슬로건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4주째 접어들고 있는 월가 시위는 청년 실업과 빈부격차 등에 항의하면서 금융권의 탐욕을 성토하고 분배정의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 집회는 오는 15일을 기점으로 전 세계로 확산될 조짐이다. 주요 외신들은 “오는 15일수백 개의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질 것이고 많게는 수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외신들은 “이번 시위는 글로벌 경제를 최악으로 몰아넣은 주범인 대형 금융기관들이 여전히 고액의 성과급을 받고 있는 반면 높은 실업률로 좌절감을 느낀 젊은이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며 “월가 시위가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똑같은 얘기를 전하고 있고 세계 시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언론들은 언제부터 이 시위를 주요 뉴스로 다룬 것일까? 이번 시위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지지층을 이끌어내며 대규모 집회로 진화했다. 사실 4주전 시위가 처음 발생했을 때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공원을 주목한 언론은 없었다. 당연히 이 시위대의 등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몰랐다. 우리가 놀라야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후에야 세상의 모든 언론이 주코티공원으로 몰려들었다. 뭔가 비슷하지 않은가?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월가 시위대의 한 관계자는 “이곳은 언론의 암흑지대(blackout)였다. 언론은 우리가 외치는 구호와 공원에서 펼친 퍼포먼스를 그저 눈요깃거리나 낙오자들의 일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뉴욕데일리뉴스>는 지난달 28일 ‘월가 점령 시위대는 한 떼의 버릇없는 꼬마들’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뉴욕타임스>도 양극화와 경제 불평등 구조, 정경유착 등 시위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시위대가 월가라는 잘못된 목표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10월11일자)

지난 1일 월가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연행자와 부상자가 생겨나자 언론은 이곳을 주목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는 미국 전역에서 동조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SNS와 인터넷의 힘이었다. 시위대는 스스로 전 세계의 여론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언론 암흑지대’의 상황은 비단 미국 언론과 시위대의 얘기만은 아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한국에서도 자발적인 집회가 추진 중이다. 현재 각국 ‘도시 점령’(occupy) 현황을 나타내는 ‘함께 점령하자’(occupy together) 웹사이트에 따르면 오는 15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서도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최근 논란이 된 저축은행 부실 사태, 대학 학자금 대출이자 문제 등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과연 한국 언론은 어떻게 이 시위를 다룰까?

우리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무엇이 우리를 분노케 하는지 잊었다. 아니 외면했다는 말이 맞다. SNS와 인터넷 뒤에서 숨어살진 않는가? 지난 10일 또 한 명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숨졌다. 사회적 타살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주목할 때 숟가락 얹어 주목하는 건 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