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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우 평화방송 TV PD

시기는 2천 년 전쯤이고 무대는 이스라엘입니다. 열두 해 넘게 ‘혈루증’이란 병을 앓아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요새로 치면 ‘만성 자궁출혈’이죠.

피를 흘릴 때마다 통증이 극심했지만, 그보다 백배 더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의 잔혹한 시선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아픔은 어김없이 죄의 결과로 여겨졌습니다. 질병도, 장애도, 가난도, 여자로 태어나 차별 당하는 것도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탓이란 거죠. 물론, 바리사이나 율법학자 같은 상위 1% 계층이 부추긴 거짓 신앙입니다. 하지만 대중은 쉽게 길들여졌고, 여인 또한 자신의 병을 그리 생각했습니다.

이 때 ‘이상한 사람’의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예수’라는 흔한 이름의 남자였는데, 캐릭터가 남달랐지요. 돈 많고 자리 높은 양반들에겐 “독사의 자식들아” 라며 섬뜩한 말을 해대는 욕쟁이였지만, 가난하거나 병자이거나 세리, 죄인처럼 인간대접 못 받는 중생의 벗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장님을 눈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했다는 얘기가 여인에게 희망으로 들려왔고, 여인은 어렵게 그를 찾아가 군중 틈에 숨어서 몰래 예수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속삭였지요.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오복음 9장22절)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여인에겐 천둥 같은 외침이고 충격이었습니다. 기적을 부르는 힘은 하느님도 아니고, 예수도 아니고, 바로 자신, 스스로 미천한 죄인이라 여겼던 여인 자신의 ‘믿음’이라는 예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복음 6장20절) … 옆에 섰던 어느 남루한 사내가 예수가 그들에게 해준 또 다른 말을 전했습니다. 순간, 누군가에게 빼앗겼던 천국의 문이 자신에게 활짝 열리고 있음을 여인은 보았습니다. 여인은 이내 그곳에 모인 고단한 이들과 함께 어울렸고, 하혈은 거짓말처럼 멈췄습니다.

성경은 예수라는 선지자가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살았던 연민의 기록입니다. 대다수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가 곧 하느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른 바 ‘삼위일체’라는 교리의 핵심이지요. 이해하기 매우 어렵지만 때론 기꺼이 맹신하고 싶습니다.

가난하고 박해 받고 의로움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약속했던 사람, ‘땅의 백성들’의 간절한 믿음이 세상을 바꾸리라고 일러줬던 사람…그가 진짜 하느님이라면, 역사의 주체가 결국 누구인지, 그 물길이 어디로 소용돌이치는지가 절대자의 섭리(攝理)로서 명확해지는 까닭입니다. 그로 인해 오늘을 살아내는 숱한 노력들이 더욱 굳세어질 것이고요.

▲ 변승우 평화방송 PD.

10월 마지막 주, 수많은 이들의 선량한 믿음이 시대의 변화를 향해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 지극한 소망들이 끝내는 모든 일을 “믿은 대로 이뤄지게 할 것”(마태오복음 8장13절)입니다. 그렇게 간구하고 확신합니다.

(성경의 해석은 앨벗 놀런 신부의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를 비롯한 몇몇 진보적 신학자들의 저서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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