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단독’ 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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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단독’ 찬스
  • 김규형 SBS 교양 PD
  • 승인 2011.11.02 14: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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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형 SBS 교양 PD

사실, 이런 ‘슈퍼 그레이트 빅-엿’같은 일은 원고지 8매로는 부족하다.
미스터리 아이템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아마 ‘이태원 살인사건’의 용의자 중 한 명인 아더 패터슨이 미국 법원에서 범죄인 인도재판을 받고 있다는, 한 방송사의 ‘단독보도’가 나가고 난 다음날이었을 게다.

아이템에 쫓겨 출근길도 쫓기듯 나온 나는 사무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또 다른 용의자 에드워드의 친구라고 밝힌 제보자. 그는 직접 에드워드와 함께 패터슨을 만났었고, 패터슨이 범행을 인정한 녹음파일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흥분된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풀어놓더니, 후반부엔 친구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엉엉 울어댔다. 진술은 꽤 구체적이었다. 하루 종일 애를 태웠다. 이는 하늘이 투-욱 던져주신 아이템일진대, 그는 연락두절. 우여곡절 끝에 밤에서야 통화가 연결되었고,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방송사 앞 횡단보도에서 그는 껄렁한 자세로 담배를 빨아대고 있었다. 불안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조용한 회의실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연신 삼천포로 빠졌다. ‘바이폴러’(Bipolar:조울증)라는 발음을 아주 유창하게 하면서 자신이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아주 영리했다. ‘자신의 이야기에 태클을 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그럴 때 우울해진다’며 미리 우물에 독을 탔다. 인터뷰 테이프는 성과 없이 두 개가 돌았지만, 나는 말을 자르기가 힘들었다. ‘녹취록 먼저…’라는 공세를 ‘인터뷰 끝나고…’로 받아쳤다. 논리적이고 열정적인 말투였지만 생각보다 버릇이 없었다.

각자 줄담배를 피우고 난 뒤, 그는 녹취록을 들려주겠다고 했다. 자신의 웹하드에 항상 보관해 두었다던 그 파일.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제보자의 스토리는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까, 옛날 사건은 어떻게 재촬영을….’ 온갖 고민이 기대와 함께 몰아치던 그 찰나. 그를 돌려보내고, 개인적으론 그를 ‘허언증 환자’라고 결론 내렸다. 두 시간 남짓의 인터뷰는 99퍼센트 가량이 방송과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던 내용들로 채워졌다.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그의 웹하드에는 100여개의 포르노 동영상만 가득했다. 백업 따윈 없었다. 세상에나, 그렇게 중요하다던 걸 말이다.

어제까지도 잘 있었다던 녹취록이 무슨 연유로 지워졌는지 설명하지 못했고, ‘이 세상 어디에도 내가 녹음한 증거가 없게 되었다’며 당황한 채 읊조렸다. 수십 차례 연락했다면서 에드워드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다. 핸드폰, 이메일 어디에도 친구와 연락한 기록이 없었다. 포기한 채, 솔직하게 털어놓으라며 추궁했지만 끝내 자작극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자정 무렵이었다.

 

▲ 김규형 SBS 교양 PD

 

그리고 다음날, 포털에는 모 방송사의 두 번째 단독보도가 올라와 있었다. 에드워드가 유족들에게 썼다는 편지를 공개했다. 뉴스에서는 역시 패터슨이 범죄를 인정했었다는 내용의 녹취록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최 모’씨라는 제보자는 뒤통수만을 보여준 채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전날 나를 유린했던 그 목소리였다. 하루 전까지도 없었던 편지는 새로 생겼고, 없어진 녹취록도 다시 생겨났다. ‘단독’ 찬스는 그렇게 날아갔다. 공친 시간이 아까웠지만 다행이었고 ‘최 씨發(?)’ 제보는 입맛이 참 썼다. 하기사, 특종이 이렇게 게으르고 무능한 PD에게 그리 쉽게 올리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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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충이 2014-04-07 17:37:24
ㅎㅎㅎ
김규형 피디님 얼굴 ㅍㅌㅊ
우리 일베 소개 자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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