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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안 가면 큰 일이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입시 거부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투명가방끈 운동’으로 이름 붙여진 이 운동은 대학입시를 거부하거나 대학을 스스로 그만둔 청소년·청년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이 생뚱맞은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투명가방끈 운동’이 주장하는 8가지 요구사항을 읽어보면, 오히려 이들의 주장이야말로 상식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다.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한다 △획일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주입식교육에 반대한다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과 강요에 반대한다 △대학과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학벌차별과 학벌사회에 반대한다 △누구나 최소한의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이런 주장들은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나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같은 공식 문서에 나와 있는 수준의 얘기들이다. 급진적인 얘기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이 얘기들과는 동떨어져 있다.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 즉 각자생존의 사회가 되고 있고 이런 사회의 현실은 교육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가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청소년들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99%의 청소년들은 행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1%가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다. 1%가 되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 따뜻한 관계와 우정, 자연과의 교감… 이런 것들을 포기하고 1%가 된 들 무엇이 행복하겠는가?

대학을 가도 현실은 그다지 밝지 않다.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고,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은 ‘알바노동’과 불안한 미래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우리 같은 것은 아니다. 덴마크 같은 국가에서는 50%만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대학에 가지 못하는 청년들도 자립할 수 있다. 학력에 따른 차별도 없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사회가 정상적인 것이지, 대학 진학률이 83%가 넘는데도 많은 청소년·청년들이 불행한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투명가방끈 운동은 우리 사회와 우리 교육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목소리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근본부터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단지 학교 교육의 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라, 노동·복지 등 폭넓은 시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만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자립 할 수 있다면, 굳이 지금처럼 대학진학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그러려면 일하는 청년들에게 생활할 수 있는 생활임금(living wage)을 보장해야 한다.

학력차별이 없다면 굳이 83%가 대학에 가고도 그 중 상당수는 취업을 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 살 이유가 없다. 일류-이류-삼류를 가르는 학벌이 없다면 굳이 1%를 위해 99%가 ‘루저(Loser) 취급’을 당하는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 

 

▲ 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

 

미국 독립혁명 당시 토마스 페인이 ‘상식’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독립을 주장했을 때,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전혀 상식이 아니었다. 영국으로부터의 자치 정도를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토마스 페인이 주장한 ‘상식’이 결국 상식으로 되었다. 마찬가지로 투명가방끈 운동이 주장하는 내용이 지금의 황량한 현실에서는 몽상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이것이 상식이고 현실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행복하게 살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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