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30분’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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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30분’인 이유
[글로벌] 영국= 장정훈 통신원
  • 영국=장정훈 통신원
  • 승인 2011.11.2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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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영국 BBC 탐사보도 프로그램 <파노라마>의 편성 시간은 지난 2007년 이후 30분으로 줄었다. ⓒBBC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물리고, 좋은 것도 오래보면 질린다. 충격도 무뎌지고, 눈물도 마른다. 지나친 반복은 감정을 무디게 하고, 집중도를 떨어뜨리다가 엉뚱하게 짜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방송은 이런 심리적, 원초적 법칙에서 특히나 더 자유롭지 못하다.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길어서도 안 되고, 똑같은 메시지를 무한 반복할 수도 없으며, 너무 많은 이야기를 쏟아 낼 수도 없다.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시청자의 인내심을 강요할 수 없는 까닭이다. 때문에 방송은 적당한 길이에 적당한 양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아,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달해야 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건 프로그램의 길이다. 영국에서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길이는 다큐멘터리를 기준으로 보통 한 시간이다. 오락이나 드라마도 한 시간 이내가 주를 이루지만 간혹 한 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메인뉴스는 BBC와 ITV 공히 밤 10시에 시작하는데 30분간 방송한다. 저녁 6시대 메인뉴스 역시 양 방송사 모두 30분이다. 매주 토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BBC 위크엔드 뉴스>는 20분만 방송한다.

▲ 영국 BBC 탐사보도 프로그램 <파노라마>의 편성 시간은 지난 2007년 이후 30분으로 줄었다. ⓒBBC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추적 60분>이나 <PD수첩>에 해당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어떨까?

반세기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BBC 간판 프로그램인 <파노라마(Panorama)>는 당초 45분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7년부터 30분으로 줄었다. <파노라마>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인 채널4의 <디스패치스(Dispatches)>는 아직 한 시간이다. 그런데 내년부터 30분으로 줄인다는 발표가 나왔다. 지역 BBC에서 제작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스포트라이트(Spotlight)> 역시 모두 30분이다. 채널4의 국제탐사보도 프로그램 <언리포티드 월드(Unreported World)>는 25분이다. 뉴스뿐 아니라 영국의 주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모두 30분 혹은 그 이내로 통일된 셈이다.

채널4의 도로시 바인(Dorothy Byrne) 뉴스·탐사보도 국장은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반토막으로 자르겠다고 발표하면서 그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요즘 시청자들은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을 원한다.”

바쁘고, 성질 급해진 시청자들의 변화에 부응해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거다. 그는 심층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를 고려해 주제에 따라서는 한 시간짜리로 제작·방송할 수도 있다는 언급을 잊지 않았다. 프로그램의 길이가 한 시간에서 30분으로 줄어드는 대신 방송 횟수는 연 30회에서 40회로 늘어난다. 이런 조치는 단순히 시청자만 의식한 조치는 아니라는 게 채널4의 설명이다.

채널4의 탐사보도팀 편집부국장 케빈 서클리프(Kevin Sutcliffe)는 시간을 줄이고 편수를 늘이는 조치가 더 많은 독립PD들에게 안정된 수입을 보장해주는 기회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디스패치스>의 편당 제작비는 30분물의 경우 1억 6000만원에서 2억원, 한 시간짜리는 2억 5000만원~3억 2000만원이다. 한 시간물의 경우 보통 2주 촬영에, 4주 편집으로 알려져 있다. 채널4는 나아가 연간 4억 5000만원을 투자해 탐사저널리즘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게 현실화 되면 2년간 20명 정도의 독립PD들이 저널리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채널4는 인하우스 프로덕션이 없으며 모든 프로그램을 독립제작사와 독립 프로듀서들로 부터 공급받는다.

이제 “영국의 모든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은 ‘30분’이다”라고 말해도 틀린 게 아니게 됐다. 방송사간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연구결과에 따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연도 아닌 것 같다.

▲ 영국=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그럼 뭘까? BBC도 채널4도 시청자의 ‘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방송에게 주어진 사회적 소명이다. 그러나 그런 소명에 앞서 방송은 시대와 사회, 시청자의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변화를 읽고,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업계 동지들의 밥그릇까지 고민하는 채널4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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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4-03-27 13:02:20
나는 주로 북한에 관련된것들을 많이봤는데 특히 BBC파노라마에서 방영된 북한의 실상을 보니까 민주주의국가 방송치고는 우리나라식 왜곡된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아주 양반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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