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의 편지] “그 바위는 이 세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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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스님에게

안부를 묻지 않는 시대입니다. 때론 물을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때론 묻는 일 자체가 피차 괴로운 일이기도 해서일 것입니다. 떠나시고, 벌써 두 번째 겨울이 코앞입니다. 버릴 것 다 버리고 오롯하게 제 몸만을 남긴 채,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서, 다시 또 혹독한 계절 앞에 의연하게 침묵으로 선 저 나무들을 보면서, 오래 묻어 두었던 스님의 안부를 묻습니다.

자다가 문득 까닭 모르게 떠오르기도 했고, 막연한 불안감이 한 밤중에 똬리를 틀기도 했습니다. 작년 초여름이었습니다. 조계사에서 열린 문수스님 추모제에서 눈물의 사자후(獅子吼)를 토하신 직후, 세상에 대한 분노와 허기,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듯, 스님은 홀연히 떠나시며 몇 줄의 글을 남기셨습니다. 모두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중략)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그것은 초여름의 번개였고, 천둥이었으며, 온몸을 아프게 하는 ‘몽둥이 죽비’였습니다. 성속(聖俗)의 경계에서 머뭇거리고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늘 물신(物神)과 정념(情念)의 구렁에서 허우적대는 대중들에게도 말입니다. 감당하지 않을 것이면 말하지 말자, 저는 그 때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그 후 아무도 스님의 모습을 보지 못했고, 어쩌다 바람 같은 소문만 들렸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저는, 어쩌다 산에라도 가는 날이면 무심히 양지바른 곳을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소용이야 없는 일이지요.

스승이 없는 시대입니다. 목숨을 주신 부모도 스승이 되지 못했고, 뭇선생님도 스승이 되지 못했습니다. 먹물근성 탓에, 혹시나 하며 글자 속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허나, 빛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고, 마음을 가누고 몸을 기댈 바위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정신의 빈자리에서는 허기와 냉소가 수시로 자리바꿈을 해대고, 그래서 그래도 배웠다는 놈은, 한 겨울 맨발의 어린애마냥 늘 눈밭을 동동거리듯 살았습니다.

그러나 수경, 도법, 명진. 그 이름들이 위로이고 힘이었습니다. 기댈 곳 없는 많은 이들의 큰 바위였으며, 어둠 속 길 잃은 이들의 등불이었습니다.
이판(理判)과 사판(事判), 산문(山門)의 안팎, 성속(聖俗)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떠나고 돌아오는 일도 서로 다른 일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큰 일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스님이 종적을 감추신 후, 길 위의 도반이셨던 노(老)신부님은 ‘어쩌지도 못하고’ 마음만 절절했습니다.

“보고 싶소. 괜찮은 척 아닌 척 해도, 왜 아니 그립겠소. 기다리지 않는다지만 왜 아니 기다리겠소. 저 강들이 살아나는 날, 허허 하며 떠날 때 마냥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오. 무탈하며 잘 계시오.” (문규현 신부 <오마이뉴스> ‘4대강에 띄우는 편지’ 중)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스님, 여전히 고단한 나날들입니다. 요지부동의 4대강은 마침내 완공의 축포를 터트리고, 대통령은 참 득의양양했습니다. 지금도 한미FTA(자유무역협정)에서 보듯, 오만한 권력의 질주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바뀐다고 해서 쉽게 ‘생명의 길’이 열릴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하여, 이제 ‘허허’하며 돌아오실 때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새벽 강물로 흘러오십시오.

스님.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지 못하는 저 또한, 죽음이 두렵습니다…, 삶이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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