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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는 새디스트, 연예인은 매저키스트
김성수<극작가>

|contsmark0|요즘 우리 대한민국에서 인권 유린 실태가 가장 심각한 곳은 어디일까? 철거민이나 저임금 노동자들? 아니면, 정신대 할머니들? 그쪽도 심각하긴 하지만, 일단 tv 프로그램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어떨까? 우리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토크쇼를 둘러보라. 출연자의 외모, 말투, 의상이나 버릇들을 안주삼아 씹어대는, 심각한 수위의 인신 공격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다. 제법 뚱뚱한 여자 코미디언 이영자는 [ 아이 러브 코미디] 에서 지겹도록 몸무게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고, 8월 첫주 [ 서세원의 화요 스페셜] 에선 김형곤, 엄용수, 심형래 등이 나와 서로 얼마나 바보같은 지를 가늠했다. sbs의 [ 좋은 친구들] 에선 키작은 이성미가 늘 시비거리이다. 이런 시비들에 비하면 발음 때문에 고생하는 이경규나 김국진, 머리가 크다고 놀림받는 김승현은 양반이다. 사실 희극 - 코미디란 것이 비정상적 인간(신체장애자)들의 비정상적 행위를 보고 즐기는 것에서 시작됐다고, 저 위대한 세익스피어의 희극에도 외모를 씹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그러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강변하지 말자.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세상은 남의 결점 쥐어 뜯어야만 솟아나는 억지 웃음말고도 웃기는 일이 널려있다. 이렇게도 웃기는 일로 가득한 세상에서 굳이 남을 헐뜯어 웃음을 자아내려는 시도의 밑바닥엔 무엇이 깔려 있나? 남을 ‘인신 공격’하며 웃기는 일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첫째, ‘인신 공격’이 만들어 낸 웃음은 잘 계산된 상황에서 나오는 건전한 웃음을 가로막는다. 좀더 센세이셔널하고 말초적인 것을 좋아하는 시청자는 자연스러운 웃음보다, 상대를 헐뜯더라도 자극적 웃음을 뽑아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남을 헐뜯으며 웃기는 것은 사실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누구나 약점 한가지씩은 갖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기발하고 재치있는 위트’나 ‘상황에 어울리는 유머 한토막’을 포기하게 되면 친구, 동료, 친지도 안가리고 공격하는 인신공격의 날카로운 칼날만이 우리의 tv에 남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이런 인신 공격은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미적 기준을 형성하게 하고, 새로운 소비형태까지도 창출한다. 얼굴이 갸름하지 않다고 수술대에 오르고, 키가 작다며 고의로 다리뼈를 부러뜨리고, 당장 배가 고파 쓰러지더라도 살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고, 아무리 비싸도 유행하는 옷을 입어야 안심하는 그들은, 반은 방송 탓이다. 쌍꺼풀, 눈, 코, 턱뼈, 치아, 다리, 나아가 성격까지, 모두를 뜯어고치려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획일적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 새롭게 돈을 벌수 있는 직업을 창출하기도 하는 tv는, 뭔가 책임을 져야한다. 셋째, 이런 출연자에 대한 인신 공격은 바로 시청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사실 시청자들은 tv에 출연하는 사람들보다 더 평범하고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조금 못난’ 출연자들에 대한 공격은 결국 ‘그보다도 휠씬 못한’ 평균적인 사람들에게로 돌려진다. 이것은 현재의 tv가 일방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실을 돌이켜 볼 때 정말 가진 자들의 못가진 자들에 대한 일방적 공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 나라처럼 경직된 풍토 아래서 제한된 소재로 코미디 를 해야 하는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어찌됐든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서 이영자의 몸집을 비아냥대고, 이경규의 치열이나 발음을 씹고, 심형래, 이주일의 아이큐를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는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론 찜찜함을 곱씹게 된다. 그 찝찝함의 실체는 유린되는 인권에 대한 거부감이며, 나아가 ‘코미디는 저질이야’ 하는 잘못된 선입견을 형성하는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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