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아브르’ ; 다행이야, 마음이 행복해졌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지혜의 되감기]

인상주의의 기원을 이룬 그림이 있다. 모네의 <인상 : 해돋이>. 이전까지의 그림과는 판이하게 다른 화법을 가진 이 작품은 태양이 떠오르는 때, 항구를 그린 것인데 그 배경이 바로 르 아브르다. 노르망이에 있는 항구도시, 모네가 어린 시절 이주했던 곳, 인상주의의 태동이 된 그림의 배경인 곳, 르 아브르. 그 곳에서 새로운 기적이 펼쳐진다.

구두를 닦으며 살아가는 마르셀. 아내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고 구두를 닦는 손님들은 많지 않고 구두상점 주인은 매번 눈치를 주고 식료품 가게에는 외상이 잔뜩인 마르셀. 하지만 그는 언제나 의연하고 성실하며 꿋꿋하다.

▲ 영화 ‘르 아브르’(Le Havre)
그런 마르셀에게 어느날 소년이 찾아든다. 런던에 일하러 간 엄마를 찾으러 집을 떠난 난민 소년 이드리사. 영국으로 가야 했던 난민들이 숨어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발각되고 거기서 탈출한 소년. 커다랗고 맑은 눈으로 마르셀을 바라보는 소년. 마르셀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년을 도와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소년을 런던으로 보내기 위한 마르셀과 친구들의 비밀 작전이 시작된다.

핀란드. 당신은 무엇을 떠올릴까. 자작나무 혹은 자일리톨 또는 순록 아니면 얀 시벨리우스 혹은 아키 카우리스마키. 그렇다. 영화 <르 아브르>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신작이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크게 울린 영화. 사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전작들은 건조하고 무겁고 서걱거리는 질감을 가지고 있다. <죄와 벌>이라든지 <성냥공장 소녀>, <아리엘> ... 그리고 블랙유머를 풀어 놓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류의.

그런데 이 영화는 놀랍게도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그 순진하고 순박한 해피엔딩이 유치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의 내공이지 않을까 싶다.

소년의 뒤를 쫓는 경찰 모네는 흡사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 같아 팽팽하게 긴장을 불어 넣어주고 여러형태로 이드리사를 돕는 마을 사람들의 손길과 행동은 고전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영화 전체를 따스하게 감싸는 음악은 옛 프랑스의 느와르 영화를 떠올리고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간결하고도 깔끔하게 영화의 주제를 전한다. 지극히 단순한 내용을 가진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이 영화는 그래서 휴머니즘을 이야기하고 기적을 이야기하며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감사와 행복을 느끼게 한다.

▲ 신지혜 CBS 아나운서/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영화를 보고 난 뒤 든 생각. 아마 5년 전에 혹은 10년 전에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이 영화를 찍었다면 결코 내놓지 않았을 엔딩. 기적이 있는 해피엔딩. 하지만 이제 그는 그런 엔딩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연륜이 쌓였고 세상을 바라보고 끌어안는 폭이 커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독이 이 세상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영화를 본 뒤에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안도감이 마음을 감싸준다. 감사한 일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