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미래를 잉태할 씨앗은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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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기억 속의 모든 한 해가 다사다난 했지만 올해는 유독 우리 사회의 명암이 교차하며 드러났다. 대바늘을 닮은 1자 두 개가 부젓가락처럼 한국사회의 어둠과 희망을 헤집어 벌려놓은 한 해였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것도 하반기에 들어 굵직한 일들이 터져 나왔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7월 말 집중호우로 최선의 주거지라는 강남이 물에 잠기고, 8월 말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 무산과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 9월 초 안철수의 대선후보 급부상, 박원순과의 후보 단일화, 10월 26일 시민후보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 11월 초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300여 일을 농성하던 김진숙의 승리, 여당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날치기 통과, 12월 조중동 종편개국, 워터게이트 사건에 버금가는 여당의 선관위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공격 폭로, 북한의 김정일 사망, BBK 폭로 정봉주 유죄확정 수감 등등.

일련의 사태를 잘 들여다보면 역사의 퇴행과 진보가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2011년은 다수 여당의 강권 날치기, 구시대적 특혜로 얼룩진 족벌언론사의 방송 개국, IT기술을 동원한 부정선거 획책 ‘꼼수’ 같은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가 미래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늘어진 한 해다. 그렇지만 권력의 횡포도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사회 정의와 언론의 자유를 갈망하는 시민사회의 열망이 기존 정치권과 수구언론을 압도하고 탄탄한 주도권을 확보했다.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보수야당의 통합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의 매체와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여론을 형성하고 움직이는 새로운 메카니즘으로 자리잡았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고르게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very evenly distributed.) 올해의 한국사회는 SF작가 윌리암 깁슨의 말이 실감나는 현장이다. MB정부 들어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온갖 구시대적 퇴행의 물살에 휩쓸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에는 2012년 새로운 미래를 잉태할 숱한 씨앗이 뿌려졌다. 시민사회가 힘겹게 찾고 만들고 심어 놓은 듬성듬성한 미래를 빽빽하고 촘촘하게, 널리 퍼뜨리고 일반화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 나아가 방송인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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