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개국 초기’ 이유로 종편 심의 특혜?
상태바
방심위, ‘개국 초기’ 이유로 종편 심의 특혜?
“지상파 준하는 심의” 말하면서도 심의 돌입하면 “초기니까…”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2.02.03 1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편채널 중 <동아일보>의 채널A가 가장 많은 심의제재를 받았다. 사진은 ‘동물 학대’논란으로 권고를 받은 채널A 개국다큐멘터리 <하얀 묵시록 그린란드>(위)와 A양 동영상 모자이크로 논란을 일으킨 <뉴스830> (아래) 방송 장면.
종편채널 심의에서 ‘개국 초기’ 등의 고려를 하고 있는 방심위의 태도에 대해 언론·시민단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은 박만 방송통신심의원장.

개국 두 달을 넘긴 종합편성채널들이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콘텐츠로 연일 물의를 빚고 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이하 방심위)가 ‘개국 초기’를 이유로 이들 종편채널에 대한 제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30~31일 제주에서 진행한 워크숍에서 “종편채널도 지상파에 준해 심의하겠다”(2월 3일, 박만 위원장)는데 의견을 모았다지만, 막상 심의 과정에선 종편채널을 위한 여러가지 고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개국 두 달 만에 종편 심의 10건= 지난 1월까지 방심위에 올라간 종편채널 관련 심의 안건은 16개로, 현재까지 10건에 대한 심의가 진행됐고 8건에 대해 ‘권고’ 이상의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이 가운데 <동아일보> 종편채널인 채널A가 5건으로 가장 많았다.

방심위는 지난해 12월 28일 전체회의에서 채널A 개국다큐 <하얀 묵시록 그린란드>(이하 <그린란드>)에 대해 방송심의 규정 제26조(생명의 존중), 37조(충격·혐오감), 44조(수용수준)를 위반했다며 ‘권고’ 조치를 했다. <그린란드>는 전체 관람가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개들이 약한 개들을 산 채로 뜯어먹게 하는 장면과 훼손된 개의 사체 등을 그대로 방송해 선정성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채널A는 지난 1월 한 달 동안 방심위로부터 무려 4건에 대해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3건)뿐 아니라 법정제재인 ‘주의’(1건)를 받았다.

▲ 종편채널 중 채널A가 가장 많은 심의제재를 받았다. 사진은 ‘동물 학대’논란으로 권고를 받은 채널A 개국다큐멘터리 <하얀 묵시록 그린란드>(위)와 A양 동영상 모자이크로 논란을 일으킨 <뉴스830> (아래) 방송 장면.

먼저 채널A는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각성 효과가 있는 드링크를 청소년들로 하여금 직접 제조토록 하고(<지금 해결해 드립니다>), 방송인 A양의 동영상을 모자이크 해 뉴스에서 방영했으며(<뉴스830>), 영화를 주제로 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성적 농담을 주고받은 것을 청소년 시청보호시간대에 재방송 해(<무비홀릭>) ‘권고’ 조치를 받았다. 또 채널A 드라마 <해피엔드>는 비윤리적 설정과 특정 업체에 대한 지나친 광고 효과 등을 이유로, 종편 채널 최초로 법정 제재인 ‘주의’ 제재를 받았다.

방심위는 지난해 12월 <조선일보> 종편채널인 TV조선에서 방영한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 대해 방송심의 규정 제35조(성표현), 44조(수용수준) 위반 등을 이유로 ‘권고’ 조치를 했으며, 지난 1월에는 방송인 A양 동영상을 모자이크 처리 후 방송한 TV조선 <9시뉴스 날>에 대해 방송심의 규정 제44조(품위유지) 위반을 이유로 ‘의견제시’ 조치를 의결했다.

그밖에도 방심위는 <중앙일보> 종편채널인 jTBC의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에 대해 청소년시청 보호시간대에 지나친 욕설과 협찬주에 대한 지나친 광고 효과를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했다는 이유 등으로 ‘권고’ 조치를 했다.

방심위 안팎에선 종편채널에 대한 일련의 심의 의결 결과가 지나치게 ‘봐주기’ 식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국 두 달도 지나지 않아 16건의 안건이 방심위에 올라온 사실 자체가 이들 방송의 선정성 등을 방증하는 것인데, 지상파 방송과 비교할 때 너무도 느슨한 심의 기준이 적용됐다는 문제제기다.

■문제 있지만 ‘개국 초기’니까 봐 준다?= 방심위도 지상파에 견줘 낮은 수위의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방심위는 지난 1월 19일 종편채널에 대한 최초의 법정 제재를 의결한 직후 “기존 유사 심의사례에 비추어 볼 때, 같은 내용이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전달됐을 경우 보다 중한 법정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종편채널의 △짧은 방송제작 경험으로 인한 심의시스템 제도화 및 심의규정 이해 미흡 △기존 매체와의 사회적 영향력 차이 등이 고려된 결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편채널이 ‘개국 초기’라는 점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종편채널의 방송인 A양 동영상 보도 관련 심의가 진행된 지난 1월 19일 전체회의에서 박만 위원장은 “보도 내용이 품위를 유지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개국한 지 얼마 안 돼 자체 심의기구 등이 정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행정지도’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개국 두 달 만에 종편채널 관련 안건 십여 건이 방심위에 상정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개국 초기’라는 점을 언제까지 감안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방심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자칫 ‘개국 초기’라는 점이 종편채널의 ‘프리 패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방심위원들이 워크숍에서 종편채널에 대한 심의를 지상파 수준으로 진행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직후에도 ‘개국 초기’에 대한 고려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지난 1일 열린 방송심의 소위원회엔 채널A의 연예정보 프로그램 <연예 인사이드>와 TV조선에서 방영한 영화 <투가이즈>와 관련한 의견진술이 있었는데, 이날 위원들은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 수위 결정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특히 청소년 시청보호시간대에 방송되는 채널A <연예 인사이드>에서 ‘19금 연극’ 열풍을 소개하며 모자이크 처리를 한 관련 영상을 내보낸 것 등이 문제가 됐다.

이날 방송심의 소위에서 야당 추천 위원들은 물론 여당 측 위원들까지도 15세 이상 시청이 가능한 프로그램에서 ‘19금 연극’을 소재로 선택한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KBS 이사를 지낸 권혁부 부위원장은 “청소년 시청보호시간대는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보편적 시간대로, 이런 시점에 그 내용(‘19금 연극’)을 내보냈을 때의 부작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SBS 앵커 출신인 엄광석 위원도 “15세 시청 시간대에 ‘19금 연극’을 (소재로) 내놓은 것 자체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더 이상) 개국 초기의 어수선한 상황 등에 대한 변명은 약발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견진술이 이후 제재 수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당 측 위원들은 당초의 단호한 태도에서 한 발 물러났다. 채널A에 이미 법정 제재의 전력이 있고(엄광석 위원), 개국 직후 첫 방송(12월 2일 방송)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권혁부 부위원장) 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 측 위원들은 ‘개국 초기’, ‘첫 방송’ 등이 더 이상 제재 수위를 낮추는 고려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개국 초기라도 15세 시청 시간대에 ‘19금 연극’을 프로그램의 소재로 다루는 것은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종편채널 관련 심의에서 이미 충분히 ‘개국 초기’ 등에 대한 고려를 해줬다는 문제제기다.

장낙인 위원은 “채널A 관련 안건 상정이 (방송심의 소위에서만) 벌써 여섯 번째이며 ‘처음’이란 이유로 벌써 네 개 안건을 (‘권고’로) 봐준 상황”이라며 법정 제재를 주장했다. 김택곤 상임위원 역시 법정 제재인 ‘경고’를 주장했고, 결국 이날 소위에선 ‘권고’ 의견 3인, 법정제재 의견 2인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해당 안건을 전체회의로 넘겼다.

일련의 논란과 관련해 방통심의위의 한 관계자는 “‘권고’ 조치를 받은 종편 프로그램 중 지상파에서 방송된 것이었다면 법정 제재 가운데서도 강도높은 제재를 받았을 것들이 여러 개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종편채널 심의에서 ‘개국 초기’ 등의 고려를 하고 있는 방심위의 태도에 대해 언론·시민단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은 박만 방송통신심의원장.

■“종편 봐 주기, 방송 전반에 부정적 영향”= 종편채널 심의에서 ‘개국 초기’ 등의 고려를 하고 있는 방심위의 태도에 대해 언론·시민단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종편채널이 보도·시사교양·연예오락 등 지상파와 마찬가지 편성을 하고 있는 만큼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하에 심의를 진행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명백한 조·중·동 종편채널 봐주기”라며 “개국 초기에는 방송을 엉망으로 해도 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종편채널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방송 등을 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됐던 부분”이라며 “0%대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심위가 개국 초기를 이유로 종편채널 봐 주기를 한다면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례로 종편채널 중 채널A의 경우 개국 두 달도 지나지 않아 5번이나 방심위로부터 ‘권고’ 이상의 조치를 받았는데, 지난해 방심위가 발표한 ‘방송심의 사례집’에 따르면 민영 지상파 방송인 SBS의 경우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 방심위로부터 권고 이상의 조치를 받은 건수는 18건(권고 15건)이다. SBS에 대한 심의 제재 건수에 TV뿐 아니라 라디오도 포함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채널A의 심의규정 위반 실태는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종편채널이 개국 초기라는 점을 백번 감안해도 종편채널 프로그램의 상당수가 외주 제작이고, 이들 외주 제작사들은 ‘초보’가 아닌 만큼 심의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위반 사례가 이어지는 건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창현 국민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방송심의는 프로그램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외적인 규제로, 정치적 목적 등이 고려되기 보단 방송이 나갔을 때 그것이 전체 방송환경에 도움 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준 자체도 모호한 개국 초기를 이유로 제재 수위를 낮춰주는 것은 결국 방송 규제의 칼날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행태”라며 “이로 인해 종편채널 프로그램의 질 저하뿐 아니라 방송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KBS의 한 PD는 “종편채널에 대해서만 심의와 관련해 특혜를 부여하는 것도 고쳐야 할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방심위에 의한 심의 행위 자체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며 “(장기적으로) 심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기관에 의한 검열 자체를 중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