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하 수상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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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하 수상한 시절이다
  • 이휘현 KBS 전주 PD
  • 승인 2012.02.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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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현 KBS 전주 PD

‘촌 PD’ 8년차. 올해 서른아홉. 이제 내 나이 앞 숫자에 ‘3’이 붙어있을 날도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아! 벌써 중년? 겁난다. 그래서일까. 요즘 생각이 부쩍 많다. 새치도 늘었다. 대책 없는 서른 한 살의 백수를 과감히 구제해 준 이 곳 KBS에서 밥벌이 한 지도 벌써 8년째. 총알처럼 흘러가버린 세월을 돌이켜 보니 내가 이루어 놓은 게 별로 없다. 꼬박꼬박 챙겨둔 월급에 큼지막한 대출 얹어 마련한 서른 평짜리 아파트? 결혼해서 애 둘 낳아 부모님께 효도한 것?(그것도 내가 낳았나? 와이프가 낳았지….)

2005년 1월, 신입사원이라는 명패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한 나의 입사동기 130여명. 연수원에 있을 땐 다들 얼굴이 밝았다. 각자가 세상의 주인이었다. 가슴 속엔 푸르른 꿈을 품고 있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7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 그 녀석들은 과연 잘 살고 있을까? 그 사이 누구는 직장을 그만 두었고, 또 누구누구는 다른 방송국으로 직장을 옮겼다는 근황이 전해져 오기도 했다.

일일연속극 연출자 명단에 동기 드라마 PD의 이름이 새겨진 걸 보면서 내 마음마저 흐뭇해진 적도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슬쩍슬쩍 스치듯 얼굴을 내비치는 동기 예능 PD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 적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저녁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찬 동기 아나운서의 활약상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활약상이, 그다지 자랑스럽진 않다. 미안하지만, KBS <뉴스 9>를 보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면 나는? 전주총국 PD 사무실에서, 나는 막내다. 하나 있던 후배는 지난 가을 본사 예능국 품으로 뛰어들었고, 몇 달 전 보도국에서 넘어온 방송저널리스트 후배는 언제 이별을 고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곳 전주에서 막내 PD다. 내일 모레면 마흔 살인데, 나는 막내 PD다. 아, 이 헛헛한 마음.

나와 비슷한 처지인 춘천의 동기 PD로부터 얼마 전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기 여자 PD가 희귀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휴직하고 요양 중인데 약값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든다고 했다. 완치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둘인데 돌볼 사람이 없어 남편도 휴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서글픈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동기에게 회사에서는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워낙 희귀병이라 산재 목록에 들지 않는다나? 애사심 운운해가며 혹사시킬 땐 언제고….

그 동기 PD의 해맑았던 신입사원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그 녀석은 연수원 생활 한 달 동안 줄곧 내 옆자리에 배정되어 있었다. 오빠 동생 하며 친하게 지냈다. 전주와 춘천으로 발령받은 이후에도 종종 소식을 들었다. 1년 전에는 다큐멘터리 제작 건으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한 달 전쯤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들은 것이다.

▲ 이휘현 KBS 전주 PD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8년차인 ‘시골 PD’. 게다가 난 막내다! 내 앞가림하기도 벅차다. 타 직종의 동기들과 함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그 녀석을 위해 돈이라도 걷자는 말 정도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일까. 드문드문 그 녀석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르면 마음이 괴롭다. 눈물 난다.
정치도, 경제도, 언론도 개판이다. 산재 처리도 개판이다. 내가 처한 상황도 개판이다. 죄다 개판이다. 2012년 세밑, 하 수상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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