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의 편지] “비가 내리는 건 꽃이 목마르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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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의 편지] “비가 내리는 건 꽃이 목마르기 때문이지?”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 승인 2012.02.0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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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녀석이 두 볼이 발그레하니 얼어서 현관문을 들어섭니다. 그리곤 머뭇거리더니, 자기가 하교 길에 시(詩)를 한 편을 썼노라며 들어 보라 합니다. 가끔씩 있는 일입니다. 우습기도 하려니와, 한편으로는 이 한 겨울에 이 놈의 시상(詩想)이 자못 궁금했더랬습니다.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부모 앞에서 녀석이 입술을 다시고선 또박또박 뇌이기 시작합니다. 이렇습니다.
 
세상만물이 흰 상복을 입은 겨울 날
아침해가 문상 오면
집집 추녀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네

본디 어린 아이의 시선이 사물의 본질을 더 잘 꿰뚫는 법이긴 하지만, 막상 어린 아들놈이 내어 놓은 시를 듣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에서 왠지 모를 걱정 같은 게 이는 걸 어쩔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 눈 쌓인 하교길을 걸어오며 아이가 한 생각치고는 자아(自我)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이 건, 한 겨울의 밀짚모자 꼬마 눈사람, 뭐 그런 동시나 동요가 아니지 않습니까. 기대대로 어린아이의 발랄함이 가득한 그런 시였으면 한바탕 웃고 끝났겠지요.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상복, 문상, 눈물. 아이에게 잡힌 이미지들이 하나의 화면처럼 선명합니다. 거 참, 이 놈이 왜 이런 발상을 했을까. 생각 끝에 저는 TV를 지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9시 뉴스를 챙겨 보는 부모 곁에서 아이가 본 것은 늘, 불타고, 죽고, 울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감동을 안겨준다는 휴먼 다큐라는 것도 상당수가 최루성이었습니다. 그러니 열 살 꼬마 아이에게도 삶은,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위안이 필요한 것이었을 겁니다.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는 거대한 절망이 엄습해 온 시기였습니다. 권력이 국민을 적대시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외면하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등 돌린, 공동체 붕괴의 시기였습니다. 절규는 있었지만 모두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외면하는 것을 통해 고통으로부터 회피하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밀레니엄은 사실상 세기말의 폭발이었을 뿐,  ‘88’(만원)과 ‘99’(퍼센트)라는 숫자로 상징화된 거대한 절망과 분노는 아무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좌도 우도, 모두가 책임지지도 해결하지도 못하는 사이 절망과 거악은 구조화 되어 갔습니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4대강, 강정기지… 그래서 TV가 현실을 다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도 아이의 눈에 세상은 다 상복(喪服)이고 눈물이이었던가 봅니다. 1500일을 길에서 싸운 여성노동자를 인터뷰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여자의 울음만으로 이 완고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눈물과 동정만으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말입니다. 버림받고 고립된 ‘쌍용’에서는 벌써 스무 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아무 일없이 돌아갑니다.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올해는 정치의 해입니다. 정치가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면, 이제 대중이 거대한 절망으로부터 헤어날 때이고, 절망의 구조화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 책임지는 권력, 해결하는 권력이 필요한 때이고, 또 그러한 권력을 만들 때입니다. 입춘이 지났습니다. 정말 봄처럼 희망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는 근거들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세상을 더 따뜻하고 발랄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해 전 봄날. 같이 길을 걷던 아들이 불쑥 한 말이 떠오릅니다.

“아빠, 비가 오는 건 꽃이 목마르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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