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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우 평화방송 TV PD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이 훨씬 지나 은사들을 만났다. 국어 선생님이 ‘성명서’라고 적힌 종이를 방송사 다니는 제자에게 건네며 감수를 부탁했다. ‘학생과 교사의 권리’, ‘참된 교육’ 같은 말들이 당시로선 생소하게 읽혔다.

그날 학교 비리를 고발하는 교사들의 농성 소식이 국내 모든 매체의 첫 뉴스에 올랐다. 1993년 가을, 이른 바 ‘상문고등학교 사태’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모교의 부도덕한 이사진과 일족들이 저지른 사학비리는 훗날 영화 〈두사부일체〉의 소재로 생생하게 희화되었다.

나와 동창들은 격동의 1980년을 전후해 ‘그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개인의 왕국을 세웠던 교장, 그에게 빌붙어 전횡을 일삼던 몇몇 사이비 교사들. 학교는 그 시절 군부철권통치의 축소판 같았지만,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뭔가 잘못됐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교육이 무너진 교실에서 스승들은 말보다 매를 자주 택했고, 제자들도 몇 대 맞는 것쯤은 별일 아니라고 여겼다.

싸움도 잦았다. 동문인 유하 감독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그렸던 폭력 교실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학교는 세상을 닮았고, 우리는 그 학교를 닮아가고 있었다. ‘인권’이나 ‘개인의 존엄’ 같은 개념은 아예 떠올린 적이 없었고, ‘권리’ 따위(?)는 당연히 유보되는 공간이 학교라고 믿었다.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우리는 제대하듯 졸업했고,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핍인가를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서울시의 ‘학생인권조례’가 신학기의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조례가 가져올 혼란을 이구동성으로 경고한다. 굳이 그들의 ‘바람’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학교는 평화로울 수 없다. 학교는 세상의 거울이다. 정의가 바로 선 나라에서 학생들의 조폭흉내가 오래갈 리 없고, 사람의 가치가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교실이 차별과 왕따의 공간이 되기 어렵겠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지금의 학교는 30여 년 전 나의 학창시절처럼 위험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딸들이 다닐 새 학년이 기대되는 것은 아빠가 받지 못했던 가르침, 학생들 스스로가 ‘한없이 자유롭고 귀한 존재’라는 자존(自尊)의 진리를 배우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소란스러움’ 자체가 자신(自身)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을 새롭게 열어 주길 바라고, 그 따뜻하게 트인 시야로 다른 친구와 선생님들의 ‘존엄(尊嚴)’을 발견하기를 소망한다.

교실 벽 액자에 투박하게 쓰인 교훈(校訓)이 저도 모르게 기억되듯, “학생인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조례의 정신이 학생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어른들의 부조리를 이겨내는 ‘항체’로 자라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순간 학교는 희망이 될 것이다.

“이런 규칙들이 지금까지 왜 없었지?” 고등학생 딸아이의 혼잣말이 새 학년의 설렘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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