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근혜, 당신이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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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근혜, 당신이 결단해야 한다”
부산일보 사태와 정수장학회
  • 이호진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
  • 승인 2012.02.2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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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

재단법인 정수장학회(이하 정수재단) 문제가 요즘 언론계와 정치권에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정수재단을 유일 주주로 두고 있는 부산일보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민주적인 사장선임제를 요구한 노동조합의 위원장인 필자를 사측이 해고하면서 시작된 사건이 편집국장 대기발령과 신문 정간사태를 거쳐 정수재단 자체의 환원 논의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24일 있었던 상징적인 두 가지 일을 중심으로 이번 논의의 쟁점을 짚어보자.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재판장 염원섭)는 1962년 6월 쿠데타 군부에 의해 부산일보와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주식을 강제로 빼앗겼다며 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정수재단과 국가를 상대로 주식 반환소송을 제기한 김지태씨의 유족들에게 강압으로 주식을 증여한 사실은 인정되나 반환청구 대상은 아니라고 지난 24일 판결했다.

김지태씨의 언론사 강제헌납은 이미 2005년 7월 국가정보원 진실위원회와 2007년 5월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가기관과 민간 전문가들이 구성한 위원회에서 두 차례나 똑같은 결과로 발표됐는데 이번에는 법원이 이를 인정해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반환청구 기각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김지태씨의 경우 의사결정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했다고 보기 어려워 증여일로부터 10년 내 반환청구를 제기했어야 하지만 50년 가까이 지나 시효가 소멸되었다”고 밝혔다.

김지태 본인이 두 달동안 구속된 데다 부인과 회사 직원들까지 동시에 구속돼 서슬퍼런 쿠데타 군부의 조사를 받았던 점은 차치하더라도 찬탈의 주체인 박정희 정권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환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최소한의 기준인 법을 적용하더라도 이번 판결에는 문제가 있다.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이나 재산권 침해에 대한 소송 가능 시효를 넓게 적용한 대법원 판례를 무시한 것이다.

2011년 9월 대법원은 문경양민학살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상고심에서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 규명 노력조차 게을리 한 국가가 시효 완성을 이유로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는 과거사정리위가 진실 규명 결정을 한 2007년 6월부터 시작된다고 봤다. 앞선 6월에도 대법원은 울산보도연맹 학살사건 유족 48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따라서 김지태씨 유족의 소송은 앞으로 상급심에서 이번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정수재단의 실질적 소유주로 평가받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최측근인 전 청와대 의전보좌관 최필립씨를 재단 이사장에 앉혀놓고는 ‘나와 무관하다’며 발뺌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지난 24일 총선 전 지역 민심을 달래기 위해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이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정수장학회에)실제 문제가 있다면 부산일보 노조든 어디든 이사진을 사퇴시키면 된다”며 나흘전인 20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재단 이사진들이 주인이므로 그들이 명확히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던 발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정수재단과 관련한 질문조차 받지 않으려던 자세에서 조금씩 진전된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 이호진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

그러나 최 이사장은 23일 ‘국민께 드리는 글’을 통해 정수재단 환원 요구를 ‘정치공세’로 폄하하며 버티기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선거까지는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박 위원장을 향한 ‘과잉충성’이 오히려 박 위원장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전국언론노조 등은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과반을 차지하게 되면 국가권력의 범죄에 대한 시효배제와 원상회복을 강제할 수 있는 특별법 입법을 청원할 계획이다. ‘스스로 해결할 것이냐, 강제로 해결당할 것이냐’ 박 위원장의 지금 선택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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