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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결혼에 즈음해 집값을 알아보며 나오는 소리다. 사상 최고의 전세 대란이라는 건 진즉 알았다. 그 와중에 서울 하늘에 집 한 채 구하기가 이리 어려울 줄이야. 원하는 조건도 간단했다. 햇빛이 잘 들어오고, 좀 조용했으면 좋겠다는. 조금 좁고, 낡아도 좋으니 그 두 가지만 만족시켜라. 그런데 막상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니 상황은 쉽지 않았다. 빼곡한 빌라 촌 한가운데서 손바닥만 햇빛 한 조각이 겨우 들어오거나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장롱 뒤에 숨겨진 무성한 곰팡이까지 발견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휴, 그래도 살 방법은 있나보다. 살 집을 드디어 구했다. 햇볕이 잘 드는 정남향도 아니고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그럭저럭 살고 싶은 동네의 살고 싶은 집이다. 이렇게 내 집(전세집이긴 하지만)이 생기고 나니 모든 게 남달라 보인다. 집 주변의 가게 하나, 나무 한그루에도 유난히 애착이 간다. 골목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은 유난히 경쾌하고, 아직 이삿짐도 풀지 않았거늘 벌써부터 ‘우리 동네’같다. 힘들게 구한 방 한 칸에 몸을 누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걸 의미했다.

앗, 그런데 집을 구하고 나니 일이 터지고 말았다. 2층인 우리 집 바로 아래에 있던 얌전한 수공예품 가게가 24시간 편의점으로 바뀐 거다. 거기까진 좋은데 편의점 환풍구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가 고즈넉한 동네의 침묵을 파고들어 웅-하고 들린다. 조용해야 할 집에 침범한 소음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장사를 해야 하는 아랫집의 사정상 환풍기야 필수불가결의 존재겠으나, 편의점 주인에게도 괜히 화가 난다. 애착을 갖고 구한 공간이기에. 그 공간의 공기가 아주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감정의 진폭은 ‘크게’ 바뀐다.

쿵, 저어 멀리서 포성이 들려왔다. 지척이 아니라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섬에서. 화약이 터지는 와중에 몇몇은 돌덩이 위에서 목 놓아 울었다. 보수지들은 기껏해야 ‘돌멩이와 바윗덩어리’ 때문에 난리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기껏해야 남들 다 사는 전셋집’ 하나 얻은 나는 괜히 이 풍경과 감정의 결이 겹친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 이상으로 공간과 사람의 관계란 얼마나 끈적거리는지. 살다보면 정이 들고, 애정을 쏟게 되고, 그래서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곳. 그게 바로 공간이다. 내 보금자리에 침범한 환풍기 소리에도 짜증이 솟는데, 당연히 원치 않는 외지인이 들어온다면. 평소에 남달리 정을 붙이던 풍경마저 송두리째 부숴버리겠다면. 그 상태에서 감정의 진폭이 그대로라면 그게 정상일리는 없다.

▲ 백시원 SBS 교양 PD

아, 그렇게 단순한 감정인 것을. 사람과 공간의 관계라는 것은. 동네 가게가 바뀌어도 괜히 허전하고, 마을의 나무가 잘려나가도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는 감정. 그 감정은 누가 책임져 줄까. 해군기지를 짓고, 반대하는 악다구니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질 상황에서 주민들이 느낄 그 극심한 피로감. 조용했던 한 마을에 어쩌면 영원히 남겨질 상흔은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지. ‘강정’의 ‘감정’은 누가 책임져 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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