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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지면이니 김동희 PD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냥 동희야, 이렇게 부를게. 위로를 전하는 데는 부드러운 호칭이 어울리지. 더구나 우린 PD와 AD로 파키스탄까지 같이 다녀온 사이잖아?! ^^;

〈파워업 PD수첩〉 2탄을 봤어. 부제가 ‘피떡수첩’이라니. 처음엔 좀 섬뜩하더구먼. 금세 떡처럼 엉킨 핏덩어리의 이미지가 떠오르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러더니 차츰 애절하고 처절해지대. 그래, 이명박 정권 내내, 〈PD수첩〉이 겪은 걸 ‘피떡’ 말고 무슨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어.

그러고 보니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을 졸속으로 결정한 정부 정책을 비판했던 방송이 벌써 만 4년이 되어가네. 2008년 4월 29일이었으니까. 몸소 겪었지만, 지금도 실감은 안 나. 유명한 보수 법학자까지 단칼에 법적 불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판정한 것을, 주구 검사들을 시켜 PD들과 작가까지 잡아들여 모욕하고, 기소하고…. 

생전 처음 수갑도 차보고 포승줄에 묶여도 봤지. 덕분에 얻은 것도 있어. 권력의 개 노릇을 하는 검사들과 길거리 필부만한 배짱도 없는 판사들의 실상을 목격했으니. 왜 그렇게 검찰과 법원에 대해 국민들이 불신하는지, 왜 개혁이 절박한지, 온 몸으로 체험한 셈이야.

방송 후, 보란 듯이 ‘〈PD수첩〉 죽이기’가 시작됐지. ‘피떡수첩’편을 보니, 새삼 실감이 나 가슴이 저며 오네. 회사는 무죄 받은 제작진을 위로는 못해줄망정 감봉에 정직까지 시키질 않나, 마음에 안 드는 PD들을 전혀 엉뚱한 부서로 보내버리질 않나…. 가족 같아야 할 회사에서 참으로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끊이질 않았지.

“민감한 사안이니 못한다”, “핫한 아이템이니 안 된다”, “조용해졌으니까 할 필요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 없으니 하지 마라”…. 그럼 PD들은 뭘 하지? 가뜩이나 아이템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죽을 지경일 터인데. 방송사에서 일하는 건 일반 기업의 샐러리맨하고는 달라. 국민들을 대신해 묻고 따져서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자리야. 그러기에 보장 받는 자유의 폭도 넓은 것이고, 그래야 월급도 제값을 하는 것이지.

“이 아이템은 안 된다”면서, 기획안을 PD 면전에서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일까지 있었다는데, 맙소사. 내 기억엔, 그런 무식한 짓거리는 악명 높은 전두환 시대에도 없었지 아마. 선배들은 대개 먼저 설득하고 부탁한 다음에 어쩔 수 없이 명령하거나 했지. 그게 표현기관이고 언론기관인 방송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양식이지. 물론, 그래도 후배들이 납득 못하면 일이 커졌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은 방송이 나갔지.  

▲ 파업 중인 언론노조 MBC본부가 지난 0일 의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를 담은 영상 <파워업 PD수첩> '피떡수첩' 편을 공개했다. 남북경협 문제를 취재하다 징계 압박을 받았던 김동희 PD가 당시 상황을 <파워업 PD수첩> 제작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취재를 중단하라 해놓고 그 와중에 있었던 곡절 때문에, 동희에게 “간부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그랬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야. 같은 선배로서,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동안 여린 마음에 새겨진 고통과 상처에 대해서.

‘피떡수첩’편을 보는 내내 먹먹했지만 특히 울컥한 지점이 있어. 동희가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이렇게 말했지.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이라든가 그것들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것이 가치 없다고 말하는 순간에 분노했는데도…다른 아이템들을 결정하고 순위를 정할 때 치욕스럽지만 영향을 받더라.”  

민주화되고 나서부터 이명박 정권 이전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기검열의 내면화, 그걸 퍼뜩 느끼던 순간에 느꼈을 자기모멸감. 너무도 이해되기에 순간 감정이 이입됐던 거야. “얼굴은 보통 사람과 비슷하나, 일반적인 감정을 느끼는 데 미숙하다.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거짓말에 능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 나쁜 짓에 대해 후회할 줄 모르며, 감정적으로 냉담하며 무심하다. 자신을 신처럼 대단한 존재로 평가한다." 사이코패스의 증상이래. 완장을 차면 달라지는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심리가 되는 건가?

그런데 동희야, 괴로워하지 마. 네 잘못이 아니니까. 자기모멸감을 느낄 줄 안다는 건 적어도 사이코패스가 아니며, 더 좋은 PD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니 자부심을 가져. 그래도 뭔가 계속 불쾌한 느낌이 남아 있다면 치유에 보탬이 될 처방 하나 알려줄게. 극장으로 달려 가 〈달팽이의 별〉이란 다큐멘터리를 봐. 시각과 청각을 상실한, 그래서 주로 촉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지.

▲ 송일준 PD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은 없다.” 하물며 두 눈과 두 귀가 멀쩡한 PD들이야,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 그러니 울지 마, 동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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