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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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스타 ④] 파업 위해 벼룩시장행사 꾸린 양지선 국민일보 기자

지난 7일은 제56회 신문의 날이었다.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되새긴다는 의미로 제정된 날이다. 이 날로 107일째 파업을 맞은 전국언론노조 국민일보지부(위원장 조상운, 이하 국민일보노조)의 조합원들은 국민일보를 바로세우기 위해 서울광장에서 한우시식행사와 벼룩시장을 열었다. 국민일보노조는 생계비 마련을 위해 지난 2일부터 횡성한우판매에 돌입했고 파업 소식을 알리기 위해 조합원과 외부인사들의 소장품을 십시일반 모아 벼룩시장을 연 것이다.

이 가운데 양지선 기자는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일가의 국민일보 사유화 반대와 편집권 독립을 내건 파업 투쟁 소식을 틈틈이 트위터로 전하고 있다. 이미 양 기자의 트위터 팔로잉 수는 2500여 명까지 늘었고, 양 기자는 작가 공지영 등 유명인에게 리트윗(RT·전달)을 부탁해 국민일보 노조의 파업을 이슈화 시키는데 노력 중이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 내 노조사무실에서 양 기자를 만나 파업 현황을 자세히 들어봤다. 

▲ 양지선 기자 ⓒPD저널

첫 방문한 국민일보 노조 사무실은 테이블과 바닥 가릴 것 없이 책과 음반, 상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부 조합원들은 벼룩시장에 내놓을 소장품에 달 가격표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도화지를 오렸고 또 다른 쪽에선 조합원 몇몇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우공동판매를 위한 엑셀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그 무리 속 양지선 기자(국제부)는 조합원들에게 업무 배치를 하느라 바빴다.

양 기자는 파업 현황을 알리는 홍보팀 일원으로서 트위터와 벼룩시장행사에 주력하고 있었다. 현 국민일보 노조의 투쟁 방식은 좀 더 확장돼 진행되고 있다. 양 기자는 “지난해 12월 23일 파업 시작할 때엔 우선 기독교계 내부에서부터 공감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라고 언급한 뒤 “그러나 파업한 지 40일을 넘어서니 움직여야할 교계는 사측은 묵묵부답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일보 노조는 투쟁의 저변을 확대키로 해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양 기자의 말마따나 현재 국민일보 노조의 파업은 ‘시즌2’ 격이다. 노조는 홍보·취재·모금 본부를 꾸려 다양한 방향으로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 재정사업의 일환인 ‘횡성한우판매사업’이 있다. 펜을 들고 현장을 누비던 기자들은 한우판매원으로서 서울과 횡성을 수차례 오가고 있다. 조합원들은 한우판매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좌충우돌 고민이 많다.

양 기자는 “파업한 지 석 달을 넘어섰다. 금전적으로 어려움은 겪는 조합원들도 늘어나 생계비 및 투쟁비 마련을 위해 시작했다”며 “소비자와 거래하는 일이다보니 물량이나 만족도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한우판매’에 초짜들인 조합원들이 벌이는 사업이다 보니 수익도 수익이지만 선의의 모금의 성격이 짙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데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조합원들은 직접 축산농가를 발로 뛰며 도축과정 등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이토록 끈질긴 싸움에 동참하면서 양 기자를 비롯한 조합원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국민일보는 순복음교회 신자들이 대다수 구독하니까 기자로선 안온한 땅이었죠. 국민일보는 조·중·동 이중대 아니냐는 시선도 많았어요. 이번 파업을 계기로 기자들이 그 안온한 땅을 뛰쳐나오니까 외려 시민들과 소통을 더 많이 하게 됐다는 이야길 많이 해요. 시민들의 연대와 지지를 다시금 느낍니다.”

양 기자 개인적으로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꼽았다. 양 기자는 “그간 노동자라는 자각을 하질 못했다. 어느 사업장이든 파업을 하고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 같다”며 “무관심에 대한 무서움을 느껴서인지 이젠 길가다가 1인 시위를 보더라도 전처럼 무심코 지나치긴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 양지선 기자와 조합원들이 7일 벼룩시장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 ⓒPD저널

이와 반대로 긴 싸움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은 없을까. “파업 당시 113명으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100명 안팎이에요. 싸움이 길어질수록 이탈자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지만 불안감이 생기는 건 사실이죠. 복귀하더라도 파업을 모른 체한 간부 선배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기자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깨닫는 기회가 됐지만 막상 조합원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게 양 기자의 설명이다. 조합원 가운데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거나 처가에 말도 못한 채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합원이 있는가하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데 애먹는 조합원도 있다고 한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양 기자가 그간 겪어온 어려움 속에서의 의미를 짚어낼 때마다 묵은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다.

“양식과 소신이 있는 기자라면 이 싸움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이길 수 있어 하는 싸움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싸움이었죠. 그간 사측은 노조위원장을 해고시키는가 하면 어떤 대화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그들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오기가 생깁니다. 총선 이후 국민의 엄중한 심판이 이뤄질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신문법 개정 등이 수반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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