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슬픈 욕망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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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슬픈 욕망을 보여주고 싶다”
[인터뷰] KBS 2TV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 김용수 PD
  • 방연주 기자
  • 승인 2012.04.16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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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든든한 지원군은 다름 아닌 ‘시청자’이다. KBS 2TV <적도의 남자>의 시청자들은 ‘본방사수’를 넘어, 공식 게시판에 애정 담긴 후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른바 ‘적남’ 마니아팬들은 선우(엄태웅)와 장일(이준혁)의 대사 속 복선을 추측하는가 하면 선우가 쓴 점자를 직접 해석해 올리는 등 ‘적남’을 향한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적도의 남자> 는 방송 초반 ‘꽃남’을 내세운 경쟁작 SBS <옥탑방 왕세자>, MBC <더킹 투허츠> 에 비해 다소 밀렸지만 탄탄한 줄거리와 주·조연들의 선 굵은 연기로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에 탄력을 받고 있다. 중반부에 접어들며 갈등이 부각되며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고 있는 <적도의 남자> 김용수 PD를 지난 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별관 내 드라마국에서 만났다.

▲ KBS 2TV <적도의 남자>를 연출하고 있는 김용수 PD ⓒKBS

김 PD는 줄곧 단막극을 맡아오다 2010년 <KBS 스페셜-화이트 크리스마스>(8부작)로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적도의 남자>로 김 PD와 호흡을 맞춘 김인영 작가는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2010), <태양의 여자>(2008), <메리대구 공방전>(2007) 등을 집필한 베테랑 작가이다.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적도의 남자>(연출 김용수·한상우, 극본 김인영)는 두 남자를 둘러싼 욕망과 배신, 상처와 복수를 그린다. 어릴 적 친구인 김선우(엄태웅)와 이장일(이준혁)은 인간으로서 끝까지 밀고 갈 수 있는 사랑의 극단과 미움의 밑바닥이 투영된 인물이다. 이들의 숨겨진 욕망은 갈등의 전조에 따라 하나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등장인물 간 팽팽한 긴장감이 짙어질수록 스태프도 바짝 긴장의 고삐를 쥐고 있다.

“인간이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니잖아요. 단지 빌 게이츠든 노숙자든 누구나 죽기 때문에 욕망은 달성될 수 없다는 거죠. 달성될 수 없는 그 한계 속에서 누구나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 자체가 슬픈 것 같아요. 욕망 뒤에 감춰진 그러한 슬픔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적도의 남자> 속 등장인물은 선악구도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김 PD는 “(김인영 작가는) 처음에 남녀 멜로 중심으로 가려다 복수를 중심에 두되 멜로를 얹는 방향으로 바꿨다”며 “워낙 이야기의 틀이 센 편이다. 자칫 ‘막장’ 소리를 듣기 쉬워지므로 인물마다 어떤 행위를 하게 된 과정이나 이후의 모습을 보여줘 설득력을 높이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장일은 자신의 아버지가 경필 아저씨(선우의 아비)의 죽음과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를 덮기 위해 친구 선우를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버린다. 그 후 장일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결백을 나타내는 대사를 연습하는 모습은 그의 이중적인 면모와 함께 추악한 진실을 덮고자 하는 장일의 숨겨진 욕망을 제대로 표현했다.

또 선우와 장일이 재회하는 장면은 직설적인 대사 대신 상징적으로 묘사해 긴장감을 높였다. 자신의 뒤통수를 내려친 친구 장일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져 눈이 먼 채로 겨우 깨어난 선우는 당시 기억을 숨긴 채 장일과 마주한다. 선우는 장일이 건넨 우유 한 잔조차도 편하게 마시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한 때나마 분신 같았던 이들의 변해버린 관계는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해 표현했다.

김 PD의 꼼꼼하게 신경 쓴 연출력은 세트, 미술, 영상 색감 등 곳곳에서 드러난다. 앞서 김 PD는 괴물이 태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담은 전작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도 이야기의 주요 배경인 ‘학교’를 찾는데 골몰했고, 여백이 강조된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

<적도의 남자>의 영상에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감이 기저에 깔려있다. 밝은 톤보다 어두운 톤에서 미약한 밀도가 좀 더 세밀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영화 <화양연화>, <푸른소금>처럼 일정한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선우의 단칸방부터 가로등 불빛까지 주황색에 검정색이 가미된 이른바 암바톤(갈색)으로 보정하고 있다.

또 진노식 회장(김영철)의 집은 검붉은 빛이 감도는 벽면과 계단으로 이뤄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소이다. 김 PD는 “통속극이다 보니 개성 있는 건물을 세트로 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진 회장의 집은 일본 근대 건축물을 본떠 만든 세트로 미술비도 꽤 많이 들고 신경도 많이 쓴 장소이다”라고 말했다.

▲ <적도의 남자> 촬영현장 모습 ⓒKBS

이처럼 김 PD는 드라마를 구성하는 내·외부적 요소에 대해선 꼼꼼히 체크하지만 연기는 연기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편이다. 본격적으로 아역에서 성인으로 전환되면서 연기자들은 서로 호흡하며 서로의 온도차를 맞춰가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 가운데 김 PD는 <적도의 남자>의 히로인인 배우 엄태웅 씨에 대한 평을 내놓기도 했다.

“엄태웅 씨 연기는 거칠어요. 현장이 워낙 바삐 돌아가니까 간혹 대본에 없는 것을 요구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엄태웅 씨는 요구한 것 이상의 무언가를 연기해서 놀랄 때가 많죠. 어떻게 보면 엄태웅 씨의 거친 연기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연기하면서 노는 사람 같아요.”(웃음)

드라마 촬영 일정이 항상 그렇듯 김 PD는 <적도의 남자> 촬영 슛이 들어간 이후 쪽잠으로 대신하고 있다. 82시간 꼬박 연이어 촬영을 하는 날도 있었다. 지난 12일부터 사흘간 김 PD는 동료 드라마 PD들과 함께 KBS새노조 파업에 동참하면서 잠시 촬영을 접었지만 지난 15일 새벽부터 촬영현장으로 복귀해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적도의 남자>는 18일 방영분부터 13년의 세월을 건너뛴다. 선우와 장일은 1970년대에서 시작해 1999년을 거쳐 2012년 현재에 발을 딛고서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뒤틀린 욕망으로 가득 찬 법대생 장일은 유능한 검사로, 눈이 먼 선우는 눈을 뜨고 장일과 대면하게 된다. 제3막에 들어선 <적도의 남자>를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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