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방송의 노동조건은 공정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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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5월 1일 미국 시키고의 미시건 거리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로 가득 찼다. 하루 12시간을 넘나드는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줄이자는 총파업이었다. 당시 만해도 임금만 준다면 시간제한 없이 노동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식이었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개인의 삶의 질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노동의 질 역시 하락을 불러왔다. 노동자들의 단결과 행동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어린 소녀를 포함해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노동절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많은 피를 흘리고서야 하루 8시간 노동은 기본적인 노동조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122주년 노동절을 지나보내면서 방송 노동자들은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MBC는 90일, KBS는 50일을 훌쩍 넘겼다. 사측은 방송 노동자들의 파업의 이유가 노동조건이 아니라며 정치파업,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응은 징계와 마타도어 일색이다. 양사의 사장 체제에서 해고자만 6명이 나왔고, 이미 중징계를 받은 조합원만 수 십 명에 이른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와 정치권은 손을 놓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방송 노동자들의 파업은 근로조건과 무관한가? 그렇지 않다. 비판이 거세된 방송은 자연스럽지 않다. 공정방송 파괴는 방송 노동자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하고 방송의 질을 저하시킨다. 이 같은 일을 막기 위해 각 방송사의 단체협약에는 공정방송실천위원회 구성 및 운영, 방송 책임자에 대한 추천제 또는 해임요구권 등 언론자유를 위한 장치들이 규정되어 있다.

▲ 5월 1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전국언론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언론자유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이날은 세계 노동자의 날 122주년이었다.ⓒ전국언론노조

이는 방송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있어 공정방송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공정방송과 언론독립을 지켜내는 일은 방송노동자가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을 지키며 노동을 제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이다.

그간 우리나라 노사 문제는 좁은 의미의 노동조건, 즉 임금을 비롯해 노동시간, 안전, 복리후생 및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문제 등에 방점이 찍혔다. 정부와 사법부의 대응 역시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노동조합의 쟁의 행위에 대해 합법과 불법을 논해왔다. 하지만 이는 편협한 해석이며, 세계적 흐름과도 맞지 않다. 유럽의 경우 최근의 노동조건은 조직 내의 의사결정 구조, 노동 환경 전반의 문제로 확대되어가는 추세이다. 특히 산업별로 노동조건은 매우 적극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200여 년간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2012년 한국의 방송 노동자들 역시 피를 흘리고 있다. 이들의 투쟁은 노동조건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방송 노동자들은 언론 자유와 방송 독립을 위한 투쟁에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투쟁의 성과와 더불어,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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