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빛 속에서 길 찾기
상태바
[PD의 눈] 빛 속에서 길 찾기
  • 변승우 평화방송 TV PD
  • 승인 2012.05.09 13: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승우 평화방송 TV PD
MBC 파업이 100일을 맞은 가운데 지난 7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서울 여의도 ‘희망텐트’를 찾아 시국 미사를 열었다. 사제단은 미사에서 “4대강이 만신창이가 되고 제주 구럼비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도 방송과 언론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결과”라면서 “당장 언론부터 살려야 민주주의와 생명평화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Scene # 1 : 모세가 유일신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성스러운 산 ‘시나이(Sinai Mt.)’는 유순한 경사에도 불구하고 산행의 호흡이 가빴다. 절망적인 암 투병의 마지막 여정으로 순례를 택한 마리아 자매, 먼저 떠난 아내의 명복을 빌러온 바오로 형제…. 창세의 에덴 이후 유일하게 하느님이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곳에서 순례자들의 속보는 카메라를 멀찍이 따돌리며 정상으로 이어졌다.

새벽이 열리고 있었다. 새벽빛은 (어느 작가의 표현대로) “칼로 치듯이” 닥쳐와서 눈부셨는데, 정상에 오른 이들은 그 빛을 ‘십계명’ 대신 가슴에 새겼다. “동이 트다”라는 일상어가 ‘종교적 신비’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빛’은 순례자들이 걸어온 온갖 땅의 그늘들을 일거에 살라버리며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입니다”(데살로니카 전서)라는 성경구절과 오버랩 되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순례자들의 영육(靈肉)을 적셔 눈물로 흘렀다. 산 아래쪽에 엄존한 세상의 숱한 풍파들이 거짓말처럼 아득히 잊혀지고 있었다. (2009년 10월 이집트 시나이산에서)

▲ MBC 파업이 100일을 맞은 가운데 지난 7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서울 여의도 ‘희망텐트’를 찾아 시국 미사를 열었다. 사제단은 미사에서 “4대강이 만신창이가 되고 제주 구럼비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도 방송과 언론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결과”라면서 “당장 언론부터 살려야 민주주의와 생명평화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Scene # 2 : 서울역에서 출발한 상여가 ‘용산 참사 현장’으로 들어섰다. 마지막까지 삶터를 지키려했던 원혼들이 일 년이 지나서야 영면하는 길이었다. 참극의 그날 이후 용산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 살았던 빈민사목 담당 사제와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작은 무리로 구호를 외쳤다.

“하느님 빽(background)이 있으니 우린 외롭지 않아요….” 그러나, 철거민들의 ‘하느님 빽’을 대변했던 ‘의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신·구교 합해 2000만명이 넘는 교세를 떠올릴 때 언제나 그렇듯 외로운 규모였다. 수많은 고통의 현장에서 매번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는 일이 애처로웠다. 누군가 그들을 가리켜 “반딧불이 같다”고 했다. 당장 어둠을 걷어내진 못하지만 밤길을 헤매는 이들에게 최소한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빛’을 이르는 말이었다. (2010년 1월 용산 남일당 성당에서)

시나이의 빛과 용산의 빛. 지상의 번뇌로부터 놓여나 ‘빛의 자녀’로서 평화로울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세상의 빛’(마태오복음)이 되어 분투할 것인가? 두 ‘빛’ 사이의 거리가 ‘성자(聖子)를 믿는 종교’의 실질적 넓이다. 이 유구한 물음 앞에 제도권 교회는 곧잘 현실을 등지는 명분을 얻고, 교회 언론은 움츠러든다. 4대강이, 한미 FTA가, 강정마을이 교회 언론으로부터 외로웠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 변승우 평화방송 TV PD
‘죄 사함의 은사’로 홀로 구원받을 것인가, ‘죄 짓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늘과 땅으로 엇갈린 천국의 해법(解法)을 하나로 풀어내는 일이 오늘을 사는 종교방송 제작자의 소명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른바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묶인 종교와 종교언론의 관계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하늘의 왕관을 버리고 땅에 내려왔다는 ‘구세주’에게, 그리고 그 땅의 진실을 올곧게 전하기 위해 의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덜 부끄럽다.
(이 글에서 언급한 ‘교회’와 ‘종교’는 ‘천주교’로 국한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